제주에 있습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씩은 지방나들이를 하게되는군요. 놀러온 건 아니고 일 하러 왔습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에서 마련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지요. 세미나 주제는 '매체언어의 품격'입니다. 어찌하다보니 제가 발제(주제발표)자가 되었답니다. 원치 않았지만, 덕분에 공부 좀 더 했다 여기고 있습니다. 시간 쪼개서 자료 그러모으고 모은 자료 분석해서 어설픈 주제발표문을 만들었지요. 자료 수집은 김미정 아나운서가  나서서 잘 챙겨주었습니다. 급히 만들다보니 어설픈 구석이 많이 있지만,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참고될지 모른다 싶어, 여기 올립니다. 끝까지 다 읽으면 활짝 핀 제주의 봄꽃(이름은 모르겠군요)이 여러분을 반겨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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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언어의 품격, 현주소와 전망

강재형(문화방송 아나운서)

1. 들어가는 말

   라디오를 들었다. 에스비에스의 낮 2시 프로그램 ‘컬투쇼’를, 다매체 시대인에 걸맞게 디엠비로 들었다. 그런데, 웬 일? 20여분 남짓한 짧지 않은 시간동안 노래는 한 곡도 나오지 않았다. 진행자 두 명과 방청객의 대화로 이어진 시간 내내 트위터 문장 수준의 짤막한, 난삽한 ‘말 따먹기’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렇다. 시대가 바뀌었다. 음악방송이라던 에프엠 라디오의 고갱이는 음악이 아니다. 그 자리를 수다가 차지했다. 옛날, 그때 ‘그 시대’에는 어떤 방송에 환호했을까.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이 인기를 누리던 때가 떠올랐다. 지직거리던 라디오에서 귀를 기울여 듣던 ‘유쾌한 응접실’이 함께 생각났음은 물론이다. 그때와 지금 방송언어를 비교하면 어떨까. ‘컬투쇼’와 ‘유쾌한 응접실’,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을 언어규범과 내용 측면에서 비교하면 어떨까. 규범과 내용 모두 옛날이 나았을까.

   사실 방송의 언어 문제를 거론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한 이후 지금껏 줄곧 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언어 관련 학자는 물론이고 신문방송학 등 매체를 연구하는 학자, 방송 제작 현장에 종사하는 실무자 집단에게 방송언어는 주요한 연구 대상이자 문제 제기의 출발점이다. 방송언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방송언어의 연구는 주로 방송언어의 오염, 혼란, 폭력성, 저속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언어 문제의 심각성을 따지는 기준은 체계로서의 언어에 중점을 두어왔다. 방송언어에 대한 논의의 열쇳말이 대부분 표준, 정확, 규범, 오용, 순화 따위였던 게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방송 언어를 바라보는 시점을 규범과 순화가 아닌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방송은 곧 문화이고, 문화적 고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언어는 한낱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지금, 우리는....

   막말 언어는 현실이 되었다.

밤 12시 ‘라디오스타’에선 엠시 네 명이 뒷골목 술집에서 안주 삼을 법한 독한 얘기를 쏘아댄다. 궁지에 몰린 게스트 역시 질세라 엠시들의 숨시고 싶은 과거사를 들춰내며 역공한다. ‘자기야’에선 남편 대 아내의 첨예한 대결 구도 속에 시시콜콜한 안방 부부 사움이 전국에 생중계된다. 시청자의 불쾌감을 자극해, 시청률이 추락할 법하건만 언급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시청률 상위권을 유지하며 지속적이고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김구라의 독설은 인터넷 시절보다 무뎌졌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속물적인 얘기들을 노골적, 자극적, 즉흥적으로 내뱉는다. ‘얜 또 뭐야!, 이 사람이...’ 식의 짧고 굵은 추임새 역시 상대 불문, 거침이 없다.<스포츠서울, 권영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밝힌 자역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언어사용’ 조사 분석에 따르면, 티브이와 라디오를 통합할 경우 총 53개 프로그램에서 비표준어 2276건, 반말 481건, 비속어와 은어 176건 총 3111건이 지적됐다. 위원회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올바른 언어사용 확립을 위해 방송사와의 지속적인 협력회의 및 교육 실시 등 자체심의 강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진현철 기자, 2010년>

   이른바 ‘루저발언’으로 ‘미녀들의 수다’제작진이 갈리는 일도 벌어졌다. 출연자의 발언이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한 것임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윤구현 기자, 매일경제>

   텔레비전은 공공의 선을 의식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티브이 프로그램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켜주기를 주문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걱정하고 비판하는 이유다.<윤구현 기자, 매일경제>

   공기로서의 방송은 사회의 건전성과 품격을 높이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책무를 갖는다. 그런데도 우리 지상파 방송은 평균의 도덕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질방송을 일삼고 저급한 유행어와 악습을 앞장서 퍼Em리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케이비에스가 방송제작의 가이드라인을 제정, 시행키로 했다니 다행이다. 막말,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쓰는 출연자를 퇴출시키고 인신공격과 인터넷조어를 조장하는 자막에도 철퇴를 가한다고 한다. <서울신문, 사설>

   ‘방송 언어는 탈규범화 하고 있다’는 게 방송언어 관련 선행연구자들의 지적이다.

장단음의 혼란(경기와 경:기), 불필요한 경음화(?쳄슝?), 음가의 혼란(제3한강교 밑을)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방송언어의 비속화 경향도 빼놓을 수 없다.

- 야, 팔자 사납네요

- 주영훈, 딱 걸렸어!

- 남편이 웬수야...

- 바보 아냐?  <방송위원회, 2002년 자료 中 극히 일부>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방송에서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방송의 공적 기능에 대한 고려를 외면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사적인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오가는 대화 사이에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기에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반말 사용을 눈감고 조장까지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향은 프로그램 형식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한 명 이나 두 명이든 제작형태가 이른바 ‘떼엠시’형태로 바뀌면서 ‘말 따먹기’ 진행추세가 갈수록 격해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포맷의 변화는 방송언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무분멸한 반말 사용 등의 비속화 경향의 원인은 방송의 ‘경박단소(輕薄短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연예인을 포함한 방송 진행자들이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이성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려는 젊은 세대의 방송 욕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인 관계가 돈독한 사람끼리의 대화에서만 반말이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서 방송의 모든 언어가 그렇듯 비속화해 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행 방송심의는 사후규제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프로그램 대본과 진행표 등의 사전심의는 각 방송사별로 시행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통과의례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 진행과 제작의 큰 틀은 대본에 따르지만 진행자와 출연자의 멘트는 즉흥발화(애드리브)에 따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각 사별로 이루어지는 대본사전 제출과 방통위 등의 사후 심의에도 불구하고 방송언어순화가 요원한 것은 어인 까닭일까. 방송사 안에 언어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중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른말 쓰기를 강조하는 부문이 있으며, 그런 노력을 하는 집단은 각 방송사별로 존재한다. ‘우리말나들이’, ‘바른말고운말’ 등의 고정프로그램 제작 방송으로 시청자언어순화 제고에도 한몫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상 언어를 도외시한 규범지상주의의 과잉교정’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순기능은 제대로 평가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기이성에 기대어 방송의 언어를 자극의 도구로 생각하는 관계자들이 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목적지상주의자’(차인태, 2002)가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수단이 정당하지 않으면 성취한 목적도 인정해 주지 않는 ‘적절성 우선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경향의 주원인은 둘로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언어규범에 대한 느슨한 인식이요, 다른 하나는 기이성을 통한 재미의 추구이다. 규범의식이 느슨하기에 언어에 대한 소양을 갖출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기이성을 통해 색다름을 강조함으로써 자기를 드러내려는 노력만 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는 것이다.

3. 지금, 세계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가족시간대의 심의를 엄격히 한다.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2002년 가요 시상식에서 한 가수가 욕설을 퍼부어 해당방송사인 폭스는 연방통신위원회에서 25만 달러 과징금 징계를 받았다.

   오락프로그램이 단지 웃기기 위해 모욕이나 거슬리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욕설과 비속어를 비롯한 막말이 밤 9시 이전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안 된다. 막말은 밤 9시 이후에도 엄격히 규제한다. - 영국 비비시가 지난해 시월 자체편성 가이드라인 수정판에서 밝힌 내용이다. 비비시는 또 국민을 대상으로 ‘비비시에서 방송되면 안 될 막말을 꼽아달라’며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권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시청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단면이다.

한진만 강원대 신방과 교수는 ‘한국 심의기관은 지상파와 케이블 성격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둬야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방송 심의는 사영과 공영, 케이블 구분없이 똑같은 잣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정민 전남대 신방과 교수는 ‘외국이 우리보다 규제가 덜하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사실은 규제가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지상파에서는 규제가 엄격하고 대신 유료채널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방송의 공공성은 케이블의 그것과 비교해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의 격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4. 나오는 말

   방송언어의 품격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풀어내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방송언어 사용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신상현 외, 2002)’는 이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 실무에 종사하는 현업자들은 ‘우수한 프로그램, 연출자, 출연자에게 주는 방송언어상 제정 및 시상’, ‘시청률처럼 수치화하는 방송언어 평가제 도입’, ‘옴부즈맨 프로그램에 언어 평가 코너 신설 또는 강화’등과 같은 외부 세력에 의한 비판과 평가를 전제로 하는 대안들에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방송 출연자에 대한 언어교육 의무화’, ‘방송작가에 대한 언어교육 의무화’, ‘아나운서 모임 등을 통한 사내 언어순화 캠페인 강화’, ‘방송언어 교본 또는 참고할만한 언어모델 서적 제공’ 등 교육적 대안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개선안을 찾는다면? 딱히 묘안은 없다. 지금 운용하고 있는 제도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그나마 답일 수 있다. 지금 있는 제도를 바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제안은 다음과 같다.

   근본적인 대책은 방송 종사자는 물론 시청취자의 규범의식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방송언어의 인식 개선과 수용자의 각성, 방송제작 능력 향상 등이 이에 포함된다. 2.방송에 있어 언어는 소통의 도구라야지 자극의 도구로만 삼으려하면 안 된다는 인식의 틀을 확산시켜야 한다. 3.이와 더불어 방송 자체의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와 사회, 경제계 전반의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품격의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언어는 사회의 공기(公器)이기에 앞서 사회를 담아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제, 앞서 제시한 ‘비교’의 답을 찾을 때가 되었다. 그때와 지금 방송언어를 비교하면 어떨까. ‘컬투쇼’와 ‘유쾌한 응접실’,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을 언어규범과 내용 측면에서 비교하면 어떨까. 규범과 내용 모두 옛날이 나았을까.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표준 발음과 어휘 등의 규범측면에서는 옛날보다 지금이 오히려 나은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방송언어의 격(格)이 지금과 견주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엔 낱말과 발음, 문장구성의 정교함이 미흡하더라도 방송에 담긴 메시지와 그를 담아낸 그릇(언어)은 깔끔했다. 이 빠진 그릇도 정갈한 마음으로 닦아 상에 올리면 훌륭한 식기가 된다.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한 값비싼 그릇도 설거지 제때 하지 않으면 건강에 해롭다.

   장소팔(본명 : 장세건, 1922~2002)도 가고, 고춘자(본명 : 고임득, 1922~1995)도 이 세상을 떠났다. ‘빵꾸똥꾸’는 위키백과사전에 표제어로 올라있다. 세상은 바뀐다. ‘웃음코드’도 재미의 기준도 바뀌어간다. 방송언어의 격은 세상의 격을 지나치게 닮아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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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꽃 선물 드려야지요.
세미나 끝난 뒤 받은 밥상은 '제주스러운' 거였습니다. 온갖 해물 잔치였지요. 배불리 잘 먹고 숙소까지 걸어왔습니다. 살랑거리며 부는 제주 바닷바람 맞으며 걷는 게 (올레길은 아니었지만) 좋더군요. 걷다보니 꽃이 눈에 띄었습니다. '꽃은 꺾지 말자'는 게 제 행동방침이지만 이번엔 그 걸 어겼습니다. 꺾어서 미안하다, 이렇게 꽃나무에 사과한 뒤 한가지 꺾었지요. 방에 돌아와 물잔에 꽂아 두었습니다. 이 꽃입니다. 이 꽃 이름은? 아는 분은 알려주시와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