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월 28일, 정월대보름) 갔던 음악회 후기 쯤 되겠습니다.
이탈리아어와 체코어의 외래어 표기도 짚어 볼 터이니 '우리말 일기'도 되겠군요.
어쨌든, 모처럼 마음먹고 그럴 듯한 감상평을 쓰려했는데, 모든 게 다 날아갔네요.
뭔 얘긴지 아시지요? 거의 다 쓴 원고를 '홀라당' 날려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생각의 편린(片鱗), 그 조각의 조각만 몇 줄 남기려 합니다. 여기는 왜
'자동저장'기능이 없는건지...
1부 공연.
지휘자 서희태 님의 인사와 작품 해설로 시작했지요. 지휘자 겸 해설자
겸 MC로 나선 서 감독의 본업은 뭘까요. 재주와 재능이 많은 이 입니다. 음악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MC 서희태' 얘기만 한다면, 훌륭합니다. 날이 갈수록 농익어
가는 진행 솜씨가 일품입니다. 무대는 물론 객석 장악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쥐락펴락은
이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지휘자 겸 작품 해설가 겸 MC인 서 감독의 '오프닝'으로 시작한 공연은
마스카니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하이라이트로 이어졌습니다. 협연한 인천시립합창단이
조금 아쉽더군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내 옆에 옆에 앉았던 토마토 님도 같은
생각이랍니다. 토마토님, 안목과 직관이 보통 수준을 훌쩍 뛰어넘네요. 예전엔 그
걸 왜 몰랐을까, 혼자 잠깐 생각했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는 '시골 기사도'의
뜻이군요.
서 감독의 맛깔스런 해설에 따르면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 빗대어)'막장 오페라'랍니다.
남녀의 얽히고설킨 관계, 남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 전편을 본 바 없으나 비장감이
서린 곡조로도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간주곡(intermezzo)은 눈을 감고 들었습니다.
영화 '대부3'의 마지막 장면이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대부의 죽음'은 이 곡으로
인해 슬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내게 남아 있습니다.
2부 공연.
바흐의 곡으로 시작해서 모차르트의 '아베베룸 코르푸스'로 이어졌습니다. 몇
년 전 같은 곳에서 들었던 연주가 귓전에 겹쳐 들리는 느낌. 감동은 변함없었습니다.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닐 겁니다. 그 때 그 느낌의 자투리는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
클릭!
드디어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알비노니 아다디오'.
제목만으로는 어떤 곡인지 모르는 이는 많아도 들으면 아는 곡입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루이스 터커'의 노래 '그레이브야드 엔절(Graveyard Angel)'은 이 곡을
편곡한 거지요.
클릭
어제 공연에서는 오르간 연주가 낯설었습니다. 그간 너무 많이 들었던 곡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익숙함이 늘 좋은 것은 아니네요. 오르간과 피아노의 주법 차이는
뭘까, 궁금해지더군요. 궁금증은 여태 풀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는 분 있나요....
드보르자크(Dvo?ak)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으로 마무리된 정규
프로그램으로 공연은 끝? 아닙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청중의 열띤
환호에 앙코르가 이어지지요. 비제의 '카르멘 서곡'. 앙코르 곡으로 사랑 받는 활기찬
곡이지요. 여기서 끝? 또, 아닙니다. 솔직하게 '(앙코르는) 두 곡만 준비했다'는
서 감독의 애교섞인 양해에 이어 오펜바흐의 '캉캉'으로 끝.
'짤막 공연 후기'도 여기서 끝.
덧붙임 1 : 근데, '드보르자크'는 '드보락(dvorak)'라 읽지 않을까요. 국어원
누리집에서 '체코어 표기법'을 보니 이렇군요.
?
|
ㄹㅈ |
르주, 르슈, 르시 |
?eka 르제카, namo?nik 나모르주니크, ho?ky 호르슈키, kou? 코우르시. |
로마자 '갈매기표 r'은 'ㄹㅈ'이 된다. 모음 뒤에 'k'로 끝나면 '크'로 표기한다(제1항:
k, p : 어말과 유성 자음 앞에서는 '으'를 붙여 적고, 무성 자음 앞에서는 받침으로
적는다).
그래서, '드볼작', '드보르작', '드보락' 따위가 아닌 '드보르자크'가 바른 외래어표기입니다.
클릭
덧붙임 2 : 오페라 시작 전에 연주하는 곡은 서곡(序曲,overture), 막간에 연주하는
곡은 간주곡(間奏曲, intermezzo)이지요. intermezzo는 '인테르메조'입니다. 영어
발음은 [int?rmetsou] 이지만, 이탈리아어가 원어이기에 이탈리아 발음에 따라 표기합니다.
덧붙임 2 :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우면산 쪽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정월 대보름에 보름달을 올려다 본 이는 별로 없었을 겁니다. 별공주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덕분에 우리도 보았습니다. 그 하늘에, 수줍은 듯 구름에 숨어있는 달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감히 드나들 생각 못하는(?) 층계에 걸린 '문(門)'을 지나
내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어젯밤 문(moon)아래 문(門)을 통과했네요, '별나라공주'님
덕분에...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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