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는 '미술'로 시작합니다. 
'미술'하면 떠오르는 게 학창시절 미술시간이겠지요. 저는 꽃병 놓고 정물화 그리고, 색종이 뜯어서 모자이크 만들고, 먹 갈아서 대나무 그려보고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미술에 재주가 있던 이들은 석고상 놓고 데생하는 걸 '생기초'로 여겼을 겁니다. 미술실에 가면 볼 수 있던 수많은 석고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잘 있겠지요. 그 중에 '아그리파'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그리파? 흔히 '아그리빠'라고 하지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아그리파입니다. 

 

   '데생은 미술학도의 기본'이라는 기본 아닌 기본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군요. '실기전형 폐지'를 선언한 미술대학도 있으니까요. '아그리파'를 열심히 그리며 데생의 기본을 익힌 미술가들은 이런 그림도 그려냅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한국 유학생이 그려준 '초상화'입니다. 지금쯤 그 '거리의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선긋기, 물감 뿌리기, 종이 찢어 붙이기, 물감 범벅해 종이 접어 찍기, 조각칼로 나무 깎기, 고무판에 칼질해 판화 만들기 따위의 '놀이'가 제게는 곧 '미술'이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입선'이나 '가작'에 오른 적도 있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에는 건축과 의상도 포함됩니다. 방송사 미술부문의 업무는 컴퓨터 그래픽과 제자(製字,글자를 만듦, 캘리그래피 같은 겁니다)는 물론 세트 디자인과 제작, 선덕여왕이 입는 신라때 옷을 만드는 일 등을 두루 아우르지요. 그 가운데 세트 디자인의 세계를 살짝 엿보려 합니다. 그 전에, 다음 설명은 '무엇에 쓰는 물건'을 가리키는 걸까요?

  사방이 네모 반듯한 벽돌처럼 생긴 쇳 덩어리가 있습니다. 육면체의 윗부분에는 손잡이 같은 게 달려있지요.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디에 쓰는 물건? 이 것의 이름은? 이름이 딱 하나면 좋은데, 일단 두 개로 하지요. 다음을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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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미술 용어, 이렇게 바뀝니다

오모리 

"그 쪽 무대 쓰러지지 않게 오모리 놓아주세요~"

'오모리'는 무게를 다는 추를 뜻하는 일본어 錘(おもり)로, 錘 대신에 重り라고 쓰기도 합니다. 우리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지탱하기 힘든 세트나 구조물을 임시 고정하기 위한 무거운 쇠뭉치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이고 있죠. 오모리를 대신할 좋은 우리말은 없을까요? 다음 표현들이 후보로 올라왔습니다.

1. 버팀쇠 : 물건이 쓰러지지 않게 세워두는 나무를 ‘버팀목’ 혹은 ‘버팀나무’라 하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말입니다.

2. 누름쇠 : 물체의 전체 면이나 부분에 힘을 가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사용 가능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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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의견’반영해 결정된 표현은 다음 주에 공개합니다.

< 문화방송 사보, '주간MBC' 671호, 2007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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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방송은 2007년부터 '무대 미술 용어 다듬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뒤져보니 2007년 6월 28일 사보에 첫 기사가 나왔군요. 그 보다 두어달 전쯤에 미술부에서 '열일'하고 있는 제 입사 동기가 전화 한통을 한 게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대미술용어 다듬기'는 미술부의 제안으로 '미술부 - 아나운서국 공동 진행'으로 시작했지요. 원 제안자는 '세트 디자이너의 고수'인 정종훈 부장, 서영오 부장입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하지은 아나운서와 MBC우리말전문위원인 국어학 박사들이 함께 연구하며 진행했지요. 보신 것처럼 '오모리'도 당연히(?) 다듬기 대상에 올랐습니다. 그 결과는 뭘까요? 버팀쇠-누름쇠-버팀쇠-누름쇠-버팀쇠-누름쇠-............... (두구두구두구둥둥, 긴장 고조시키는 북소립니다~) 네, 다듬어진 용어는 '누름쇠'입니다. 

  미술부가 '누름쇠'로 다듬은 '오모리' 얘기를 하면서 제목은 '중계부...'로 붙였네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여의도 문화방송 앞마당에 들러 가을의 햇빛과 바람을 즐겼지요. 우리끼리 '등나무 벤치'라 부르는 그 곳에 온갖 중계용 장비 들이 널려있었습니다. 무엇을 하시는가, 중계부 입사동기인 홍성기 부장에게 물으니 '동영상 매뉴얼'을 만든다네요. 역시, 문화방송의 중계팀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군요. 거기서 그쳤으면 오늘 일기도 없었을 겁니다. 거기서 한숨 돌린 뒤 자리 털고 일어나려는데 중계팀 선배가 내게 느닷없이 질문을 하네요.

  선배 : 저거, 오모리(오무리)를 뭐라고 하자고 했더라?
  나 : 네? 그 게 뭐지요?
  선배 : 저기 쇳덩어리! 뭘로 바꿔 부르자고 하는 거 사보에서 봤는데...
  나 : 아, 맞다.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서, 미술부의 세트팀장 서영오 부장에게 확인 전화했습니다. '오모리를 뭐라 하자 했지?'에 대한 답은 물론 '누름쇠!'였지요. 덕분에 이산가족(엠비시는 여의도 본사와 일산 드림센터로 나뉘어 살림하고 있습니다)끼리 통화도 했군요. 뭐, 이런 사연으로 '중계부는....'이란 제목을 단 겁니다. (이제하의 소설 제목)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것 처럼 말입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가는 문화방송의 프로그램은 화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힘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랍니다.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송을 이끌어가는 제작진의 힘은 시청자 여러분의 성원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덧붙임 1 : 아그리파는 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였다는군요. 2000년전 서양 인물을 그리는 이 땅의 미술 학도들에게 정몽주(고려말 인물입니다, '정몽준' 아닙니다), 세종대왕 등의 우리 선조의 조각을 보고 데생하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덧붙임 2: '세트 디자이너의 모든 것'은 '정종훈 블로그'에 가시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blog.imbc.com/blog.main.index.screen?p_club_id=setdesign
백문이불여일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