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를 '들으면' 운동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관중석의 함성이 어우러지면 경기장의 열기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뭔가를 눈 앞에 떠올리게 한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온갖 비디오 매체가 판을 쳐도, 라디오 방송은 그래서 여전히 매력이 있다.

  먼저, 나 어릴 적 얘기 하나 하련다. 어쭙잖은 일이라 여겨질지 모르는 일이긴하지만. 
'납량특집[납냥특집]'으로 기억하는, '전설의 고향'쯤 되는 라디오 방송극을 들었다. 백년된 여우(또는 구렁이)와 나무꾼의 이야기였던 거 같다. 꼬리 아홉달린 여우(구미호)나 백년 묵은 구렁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옛날 이야기의 단골 출연자. '여우가(또는 구렁이가)  어찌어찌하면 사람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의 염통(또는 피, 간 따위)을 먹어야 한다' 뭐, 이런 줄거리였다. 방송극을 듣던 중 어느 대목에선가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여인으로 변신한 요물(구렁이 또는 여우)이 구슬을 입에 물고, 그 걸  유혹한 남자와 입에서 입으로  주고 받는 장면이었다. 말 그대로 남녀의 혀가 오가는 설왕설래(舌往舌來) 장면. 이렇다할 교성(嬌聲)이나 거친 숨소리도 없던 그 장면이 아마, 내가 경험한 첫 에로티시즘이 아니었나 싶다. '야동'이 널려있는 이 시대에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일지 모르겠다.

  이렇듯 그림이 없어도 사진과 비디오 없이도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게 바로 '말'과 '글'이다. 엊그제 이러저런 잡지를 뒤적이다 발견한 '묘사'가 나를 탄복하게 했다. 

특이하고 희귀한 호사도요의 형태

몸 길이는 약 25cm 정도이며 부리는 4-5cm정도로 따오기처럼 아래로 약간 휘어져 있다. 날개는 12~15cm, 꼬리는 3.5~4.7cm, 부척은 3.8~4.5cm 그리고 체중은 110~120g정도이다. 호사도요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깃털이 화려함을 지나 호사스럽기까지 하다.  수컷의 머리꼭대기와 뒷머리는 황갈색의 넓은 띠가 중앙선을 지나고 그 양쪽은 짙은 올리브색이 분포한다. 등과 어깨깃은 녹색광택을 띤 올리브갈색이고 눈앞은 흑갈색이며 얼굴도 어두운 갈색 바탕에 흰색의 작은 얼룩무늬가 있다. 배, 옆구리, 아래꼬리 덮깃은 흰색을 띠고 흰색의 어깨끈 같은 선이 있다. 허리는 약간의 엷은 황갈색을 띤 회색으로 검은 색의 가로줄이 있고 흰색의 작은 얼룩이 산재한다. 다리는 노란색을 띤 녹색이며 날 때는 아랫 날개덮깃이 흰색으로 보인다. 수컷의 날개 윗면은 암컷보다 노란색점이 뚜렷하다. 눈은 비교적 크며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보이며 눈 주위는 노란색의 테두리가 특징이며 뒤로 뻗어있다. 한편 암컷은 날개, 허리, 꼬리는 비슷하나 깃털색이 짙다. 눈 주위에 있는 흰색의 테두리가 특징적이며 뒤로 뻗어있고 목은 어두운 적갈색이다.  
호사도요의 생태와 생존 전략
새들은 봄이 되면 저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새들이 내는 소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번식기때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거나 자신의 번식지역을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Song)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일반적인 대화 또는 신호로서의 소리(Call)로 나눌 수 있다. (중략) 호사도요는 수컷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암컷이 구애와 과시 행동을 한다. 번식기가 되면 암컷은 지상에서 날개를 위로 뻗어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듯이  날갯 짓을 하며 몸을 좌우로 움직인다. 그리고 가끔 방향도 바꾸어 가며 도약도 하면서 꼬리를 상하로 움직이며 과시행동을 한다. 경계할 때는 ‘걋, 걋’ 하고 소리를 내지만, 노래 할 때는 ‘코흐- 코흐-’,  ‘코흐- 코흐-’ 또는 듣기에 따라서는 콩콩 혹은 ‘오- 워-’, ‘오- 워-’ 하면서 노래한다. 호사도요 암컷이 밤에 내는 노래 소리는 부엉이 소리처럼 들리나 약간 부드러운 소리로 노래한다. 아니, 노래라고 하기 보다는 어쩌면 장차 알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며 울어버리는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중략) 산란기는 4~7월이며 한 배에 약 4-5개정도의 알을 낳는다.  알은 황 회색 바탕에 검은 갈색의 거친 무늬와  엷고 어두운 자색의 얼룩점이 산재하며 크기는 장경 25.9mm × 단경 15.5mm 이다.  

  문화재청에서 달마다 찍어내는 잡지 '문화재사랑'에 조삼래 문화재위원이 쓴 글이다. 
글을 가만히 따라 읽어가며 상상을 하면, 눈앞에 잡힐 듯 '호사도요'의 생김이 그려진다. 잘 안 된다고?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새를 묘사한 글을 두 번, 세 번 거푸 읽으며 머릿속에 떠올리면 어느새 눈 앞에 나타나는 '새 그림'을 볼 수 있을 거다. 내가 그랬으니, 여러분도 가능할 터. 눈이 '겁먹은 듯한 모습'이란 표현도 재밌다. 

  '호사도요' 사진은 이 자리에 옮기지 않는다. 여러분이 상상한, 머릿속에 그려 떠올린 모습이 곧 '호사도요'가 되기에 그렇다. 알은 이렇게 생겼다. 내 눈엔 메추리알과 똑같아 보인다. 건드리면 부서질 듯 웅크리고 있는 가녀린 새끼가 왠지 애처롭다. 

<김현태 사진>
 
  밑줄 친 낱말 몇 개는 (사전찾는 노고를 덜기 위해) 뜻풀이를 덧붙인다.
* 부척 :  새의 다리에서,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어려운 한자어이다.
* 올리브색 : 감람녹색. 감람녹색은 '감람나무 잎의 빛깔과 같이 누른빛을 띤 녹색'이다. '감람나무'는 무슨 나무? 올리브나무 비슷한 것이란다. '블랙올리브'는 잘 익은 올리브를 소금에 절여 만든 것. 흔히 올리브나무를 감람나무로 - 특히 성경에서 - 번역하기도 하지만 '오역'이라는 지적이 있다(민영규, 『예루살렘 입성기』,대학문고9,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4)
 * 장경 - 단경 : 타원에서 긴지름과 짧은지름을 이르는 한자어. 예전에는 '장축-단축'이라 했다.
 < 위 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나는 '그리워하다', '그립다'가 '그림'에서 왔다고 여긴다. 볼 수 없는 것, 만날 수 없는 이를 마음과 머리에 그림 그리듯 그리는 짓,  그 게 그리워하는 거라는 얘기. 엉뚱하다 하지 마시길....

덧붙임 : 새가 지저귀는 것을 옮긴 의성어 '걋걋, 코흐코흐, 콩콩, 오-워'라 듣고 옮길 수 있는 우리말과 글에 새삼 놀랐다. '노래(song)'와 '신호(call)'로 나누는 것, 비로소 알았다. 나이 마흔, 헛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