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큰일이 일어났다.
전직 대통령이 사망한 것.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이념과 공과를 따지며, '죽음의 무게'를 저울질 할 일은 아니다. '자살'과 '서거' 사이의  이른바 '온도차'는 이 글 뒤에서 따져보자.

  말과 글은 그저 '표현'을 위한 건 아니다. 그 안에는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다. 영어는 고급언어이고 스와힐리어는 그렇지 않다는 류의 잣대는 경박한 수준도 안 되는,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번 주말 신문 '북섹션'을 장식한 책 '아프리카 트랙'을 소개한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레소토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전 국토가 고도 1000미터를 넘는 나라다. 사람들은 길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했다. 알렉상드르 부부는 "일정 고도를 넘으면 인간은 나쁜 생각을 품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레소토 말에 거창한 철학을 설명하는 용어는 없지만, 우유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110개나 된다.<조선일보, 5월23일 토요일, 13면>

  그렇다.
먹고 사는데 불편없고 '나쁜 생각을 품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굳이 철학용어가 없다한들 어떠랴. 흔히 '에스키모'로 알려진 이누이트의 말에는 다양한 눈(雪) 표현이 있듯이 레소토에는 우유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많은 게 당연하다. 이번엔 '모자 쓴 사람은 누구인가'란 제목을 단 '웃기는 답안' 얘기를 옮긴다.

  어느 초등학교 일학년 학생의 답안지는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어떤 것을 담고 있다.
황소가 손에 거울을 들고 제 얼굴으 ㄹ비춰보는 그림 아래 "황소가 ( )( )( )봅니다"라고 적혀있다. 정답은 물론 '거울을'이다. 그런데 어린 학생은 "미쳤나"라고 썼다. (중략) 그가 그림 속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 학생은 동사 '보다'의 용법을 폭넓게 알고 있다. (중략)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모자를 쓴 사람과 낚시질을 하는 사람을 함께 그린 그림이 있다. 문제는 "이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것, 요구하는 답은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 아이는 매우 난감한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의 이름을 알겠어요?" 이 학생은 틀렸다. (중략) 그런데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틀림없이 외국의 학습지에서 번역했을 질문의 말 자체에 있다.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어느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나요?"라거나, 최소한 "누가 모자를 쓰고 있나요?"라고 물었어야 한다. 코드의 바탕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다. 잘못된 코드는 잘못된 그만큼 더 강압적이다. 삶의 진실과 따로 노는 코드는 결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한겨레, 5월23일 23면, 문학평론가 황현산>

   이제 '자살'과 '서거'를 따져보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는 사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오죽하면 '인명은 재천'이란 옛말이 있을까. 말 그대로 하늘 뜻에 따른 것이다. 어제 노무현 전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한 걸 두고 "'서거'는 말이 안 된다. '자살'이라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 말? 말이 안 된다.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자진(自盡)이다. 병사(병들어 죽음), 사고사(사고로 죽음), 익사(물에 빠져 죽음)처럼 '사망 이유'를 이르는 말이다. 선종, 별세, 타계, 서거와는 줄기가 다른 표현이란 얘기. 

  밉든 곱든 이 땅의 대통령을 지낸 이가 세상을 떴다. 그(또는 '그의 죽음)를 폄하려는 이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고인에 대한 예의를 떠나, 그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 땅의 유권자를 가벼이 여기는 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붙임 1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에 유감을 남긴 글, 대통령의 죽음을 이르는 또다른 표현에 유감을 남긴 글은 여기 가면 볼 수 있다.
http://blog.imbc.com/blog.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
happysky&p_menu_id=2&p_list_type=1&order=&p_party_seq=&search_field=
title&search_query=%B4%EB%C5%EB%B7%C9&message_id=43855

http://blog.imbc.com/blog.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
happysky&p_menu_id=2&p_list_type=1&order=&p_party_seq=&search_field=
title&search_query=%B9%DA%C1%A4%C8%F1&message_id=31108

덧붙임 : 언어 다양성의 중요함과 언어멸종의 심각성을 다룬 책으로 '사라져가는 목소리들(Vanishing Voices)', '언어의 죽음(Language Death)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