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내세워 모이기 시작한 촛불문화제가 벌써 한달을 훌쩍 넘겼다. 지난 주말엔 '72시간 릴레이'가 이어졌고 내일은 '6.10 항쟁' 기념일에 즈음한 대규모 행사가 예정되어 있단다. 어제 오늘 사이엔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로 도심 한복판을 '봉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으리라 예단했던 정부도 드디어 수습책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요즘 시위 문화를 두고 말이 많다.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집회 문화. 배후를 찾던 이들도 이제는 딱히 '주동자'를 꼬집어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은 특정 언론사 앞에서 '전기세 아까우니 불꺼라'를 연호했단다. 여기서 잠깐. '전기세 아깝다'?

  전기와 수도 사용료는 세금이 아니다. 세금은 정부가 걷는 것. 도시가스 요금을 두고 '가스세'라 하지 않는 걸 보면 '전기세'와 '수도세'의 '공공재 인식'은 뿌리가 깊다. '정부가 전기와 수도 공급을 민영화 하려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민영화 하기보단 '전기세''수도세'로 할테니, 차라리 정부에서 세금 걷어 운영하라는 얘기 또한 나옴직하다. 

  '전기세' '수도세'는 전기 요금, 수도 요금이라 해야 맞다.

  시위 문화의 변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늘 접한 중국 시위의 새 양상을 보니 그렇다. 중국 쓰촨성의 '산보 시위'를 전한 현지 특파원의 기사를 보자. 

  한국의 촛불시위에 비견되는 ‘산보’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중국에서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일 펼침막이나 팻말, 구호, 노래도 없이 오로지 특정 장소를 어슬렁거리는 느긋한 시위인 산보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침묵의 거리시위’라고 할 수 있다. 쓰촨성 청두의 블로거 ‘노란 복숭아’는 지난달 초 청두 시내에서 열린 산보 시위에 참여했다. 당국의 대형 정유공장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그는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공지된 시간에 맞춰 거리로 나갔다. 거리엔 이미 수백여명의 산보객들이 나와 있었다. 이들의 산보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산보객들은 거리를 걸으면서 휴대전화 메시지로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들고나온 나무집게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노란복숭아는 “이번 산보는 성공적이었다”며 “산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모두 참여자들의 뜻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산보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체로 고학력·고소득층에 속한다. 건강·환경 등 주로 생활 이슈를 제기하는 이들은 블로그, 채팅,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동지’를 규합한다. 산보는 조직이 아니라 이슈 중심으로 이뤄지며, 이런 특징이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푸젠성 샤먼에선 대형 화학공장 건설에 반대하는 대규모 산보가, 지난 1월엔 상하이 중심가 난징루에서 자기부상열차의 전자파 피해를 우려하는 산보 시위가 벌어졌다.

산보는 집회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에서 집단적 요구를 안전하게 표출하려는 시민들의 ‘발명품’이다. 중국 헌법은 시위 권리를 보장하지만, 공안기관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산보는 이런 법의 구속에서 자유롭다. <한겨레 신문,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

  '산보 시위' 기사를 읽다가 '산보는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 지적한 이의 글이 떠올랐다. 다음이 그 글이다. 

  '산보'는 일본 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말로 원래 약학 용어였다. 광종유석, 유황과 흰 석영 등 다섯 가지 광물성 약재를 처방한 약을 오석산이라 하는데, 이 약은 허약체질 개선에 쓰인다. 그런데, 이 약을 복용하면 금방 효과가 있어 몸이 따뜻해지지만 이 약을 복용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으면 약의 독(獨)이 가득 차 해가 된다. 따라서 몸이 빨리 따뜻해지게 하려고 걸었는데, 이를 '산보'라 한다. 이것이 일상용어가 된 '산보'의 어원이다. 따라서 '산책'이라 써야 한다. [정진한, '일본에서 온 낱말 몇 가지', 말과글 71권 1997년 여름호, 56~ 57쪽] 

  '산보는 일본에서 들여온 한자이니 산책으로 순화해야 한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다. 그렇다면 중국도 일본 한자어의 영향으로 '산보'라 하는걸까. 아닐 거다. 산보(散步)의 일본발음이 [산:뽀]여서 일제강점기를 거친 이들이 '산책은 우리 한자어, 산보는 일본한자어'로 우겨 넣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대기'양념 또한 일본어 '다다기'에서 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앞장 서 나서는 일은 즐겁다. 그래서 웃으면서 해야 할 일이다. '편파보도'에 앞장서는 언론사 앞에서 '전기세 아깝다'해도, 하릴없이 배회하는 듯 '산보 시위'에 나서는 것도 밝은 얼굴로 웃으며 할 일이다. '전기세' '산보'란 표현을 도마 위에 올리든 말든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