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숭례문이 무너져내렸다. 뉴스 속보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우리 가슴도 무너져내렸다. 기가 막힌 일이다. 문화재여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징적 관문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유구무언. 뭐라 할 말이 없다. 누구 책임인지 따질 계제도 지금은 아니다. 

  몇 해전 각계 전문가들이 '숭례문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삼아야한다'했단다. 대표 문화재를 유적지나 상징, 대표유산이라 하지 않고 랜드마크라 하는 게 마뜩치 않다는 얘기는 여기서 하지 않으련다. 어쨌든, 그 '랜드마크 Landmark'가 이제 흉물스레 불탄 앙상한 서까래로 남아 있다.

  화기(火氣)를 누르려 현판도 세로로 세워 썼다는 숭례문. 현판 쓴 이는 세종의 형님인 양녕대군. 짓기 시작한 때는 태조 4년. 3년 뒤인 태조 7년(서기 1398년)에 완성한 건물이다. 세종과 성종이 중건한 기록도 남아 있는 숭례문. 조선 왕조의 시조인 태조가 지어서 '성군' 세종의 손도 거친 문화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유산이 완성된 지 610년만에  불타 버렸다. 불과 다섯시간 만에....

  화마(火魔)가 치솟는 숭례문 화재 현장을 중계한 화면에 어처구니가 보였다. 불과 연기 속에도 선명하게 드러난 어처구니. 용마루 끝에 올라선 어처구니가 유난히 애처러워 보였다. 화재를 막기 위해 올려놓은 어처구니도 (방화로 추정되는)화재엔 힘쓰지 못했다. 말 그대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다.

  어처구니. 누구는 맷돌의 손잡이라 하지만 국내 어떤 국어사전에서도 그 뜻은 찾을 길 없다. 고건축 전문가는 다 아는 용마루에 올라서 있는 어처구니 또한 사전에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저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로 풀이해 놓은 게 전부. 이 또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문화유산 보전하지 못하는 형편이니 무형 유산인 우리말, 국어사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것 또한 놀랄 일 아니다. 초고층 '랜드마크'세우고 운하 뚫는 데 쓰는 힘의 1/10만이라도 '유산'을 길이 보전하는 데 쏟았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시간들여, 공들여, 돈들여도 어제까지 멀쩡했던 숭례문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덧붙임 : '어처구니없다'의 어원 하나는 용마루 끝의 어처구니에서 왔다. 번듯한 건물 한 채 지어놓고 (지금으로 치면) 준공식을 하는데, 아뿔싸, 용마루에 있을 게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 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나왔다는 설(說)이다. 맷돌의 어처구니에서 온 어원도 있다. 맷돌 앞에 앉아 콩 갈아 비지 만들려 하는데 맷돌 돌리는 손잡이(어처구니)가 없는 것. 이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데서 왔다는 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