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클럽'뒤에 '호프집'? 2007.08.30   아나운서들은 직업병을 지니고 산다. '특이한 악몽'에 시달리는 병, 매시 정각마다 알리는 시보에 화들짝 놀라곤 하는 병,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이상징후'를 콕 찍어내는 신기(神氣)도 병이라면 병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되짚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병도 그의 하나이다.   조금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방송 녹화 현장의 느낌이 배어있는 목소리, 평소보다 달뜬 느낌이다. 헬스클럽을 방송에서 그냥 써도 되는 거냐, 이렇게 묻는 전화. 익숙한 목소리. 아끼는 내 후배 김완태 아나운서가 한 전화였다. 콩글리시인 '헬스클럽'이 방송에 적합한 표현이냐, '피트니스센터'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긴데....   헬스클럽 : 건강이나 미용을 증진하기 위한 운동??휴식 시설을 갖춘 체육관<표준국어대사전> 이렇게 버젓이 사전에 올라있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아나운서들은 '별 것도 아닌 것'을 확인하는 '직업병'을 지니고 산다. '헬스 클럽'은 Health Club을 외래어 표기에 따라 옮긴 거지만 영미권 사람에겐 'Hell's Club(헬스클럽)'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표현이다. Hell's Club? 낱말 뜻 그대로 오해하면  '지옥 클럽'이 되는 거다.  '하얀전쟁'으로 유명한 소설가 안정효가 엮어낸 '가짜 영어사전'에도 '헬스클럽'이 올라있다. 위와 같은 뜻으로 말이다. 미국에선 '피트니스 센터 (Fitness Center)'라 한다.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 김완태가 괜한 문의를 했을리 없다. 전화 첫마디에 '어떤 질문'인지 단박에 알아챈 나. '정답'은 간명했다. 그냥 써라!   영어권, 특히 미국에서 '피트니스 센터'라 하든 '짐(Gym)'d이라 하든 우리에겐 '헬스클럽'으로 널리 통하는 게 현실. 언어현실이 그러하면 인정해야 한다, 이 게 내 뜻이니까 말이다. 비슷한 보기로 '호프집'이 있다.    호프 : 한 잔씩 잔에 담아 파는 생맥주. 또는 그 생맥주를 파는 맥줏집<표준국어대사전>   독일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호프(Hof). 내가 아는 한, 독일어에 '생맥주'의 뜻은 없다. 독일 맥줏집에 '호프'가 붙는 건 '광장(넓은 마당)'의 뜻을 담기 위해서이다. 혹시 맥주 원료로 쓰는 'Hop'이 아닐까?    맥주 만드는 재료의 하나인 Hop의 표기는 '호프'가 아니라 '홉'이다. 이리 생각하고 저기를 찾아봐도 '호프(Hof)'가 생맥주를 뜻하지는 않는다. '호프는 독일어에서 온 말'이라 밝힌 국어사전. 모든 사전이, 사전에 오른 모든 뜻풀이가 모두 '진실'인 거는 아니다. 어쨌든...   미국에선 '헬스클럽'을 '지옥클럽'이라 여기고, '호프'가 독일에선 생맥주가 아니어도, 우리나라에서 그 뜻으로 널리 쓰면 그만이다. 아니, 아쉽긴해도 인정은 해줘야 한다. 사전에도 (어원과 뜻풀이가 바르지 않은 게 유감이지만)표제어로 올려놓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헬스클럽'에 께름한 구석이 있어 전화로, 메일로 다짐하듯 확인하는 건, 아나운서들만 그런 게 아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제작진 거개가 그렇다(고 믿는다). 아나운서들이 그네들의 '상담역'이다. 지난주에 우리는 '서울 드라마 어워즈'에 출품된 여러나라의 작품과 감독, 배우 이름의 외래어표기 감수 의뢰를 받았다. 그 전 주에는 '휴대전화 서비스 안내문의 문장 호응'을 분석해 달라는 '불만제로' 연출자의 요청도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이 보고 듣는 방송 프로그램은 '별 거 아닌 걸 별거로 여기며 사는'이들이 만들어 보내드리는 거다. 덧붙임 :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헬스클럽'의 '순화어'로 '건강 방'을 제시했다. '요즘 몸이 부쩍 무겁게 느껴지는 이는 건강방에 다니는 게 좋다', 이렇게 쓰는 게 좋다? 선택은 언중들이 하는 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