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 내가 겪은 일은 아니다. 방송에 입문한지 55년을 넘긴 원로 방송인이 직접 들려준 얘기 한토막 전하려한다.
장충체육관. 당시엔 드물었던 해외 중계방송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의 일이다.
내가 중계를 맡았다. 라디오 생방송. 농구 중계 방송이었다. 방송 시작 첫 멘트는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에게 인사를 해놓고도 방송 끝날때까지 나는 몰랐다. 중계 방송 끝내고 방송국에 돌아온 뒤에야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찾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외 현지 중계방송이 흔치 않던 시절, '현장의 흥분'을 전하려 했던 멘트가 입버릇처럼 붙어서 생긴
일이었다. < 임택근 아나운서의 회고 >
임택근 아나운서가 방송에 입문한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전쟁통에 임시정부가 부산에 있을 때였다. 내가 방송사 문턱에 들어선 때는 1987년. 유월 항쟁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한쪽에서는 88올림픽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던 때였다. 임택근 아나운서와 나는 방송 입문을 기준으로 따지면 36년 차이, 나이로는 30년
차이. 전설처럼 전해지던 얘기를 대선배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그 '맛'이 달랐다.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들었으니 말이다. 그 회고를 들으며 나는 '강재형스러운' 궁금증에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곱씹었다.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엊그제 신문에서 '조국/모국/고국'의 차이를 풀이한 글을 보았다.
셋 다 자신의 나라를 뜻하지만 쓰임엔 차이가 있다. '조국은 국내에 있는 사람이든, 해외에 있는 사람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데 반해 '모국'과 '고국'은 주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 쓰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고국'은 해외에 잠시 머물
때도 사용할 수 있지만 '모국'은 외국에 잠시 나가 있을 때는 쓰지 않는다. <2007년 6월4일, 중앙일보, 이은희
기자>
1970년대 시도때도 없이 듣고 부르던 '너와 나'란 군가. 거기 나오는 '조국'이 생각난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침략의 무리들이 노리는 조국/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이으랴 남북으로 끊어진 겨레의 핏줄 / 이
땅과 이 바다 이 하늘을 위해 너와 내가 맞잡은 손 방패가 되고 / 어놔 나의 충정 속에 조국은 산다 / 아아 피땀 흘려 싸워 지킨 그 얼을
이어 전우여 굳게 서자 내 겨레를 위해'<김성용 작사,김강섭 작곡, '너와 나' 1절>
이 노랫말에 나오는 '조국'을
'모국,고국'으로 바꿔 부르면?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침략의 무리'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번엔
1945년에 LP로 발매된 '귀국선' 노랫말을 보자.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 '귀국선' 1절>
http://blog.naver.com/wjd2415?Redirect=Log&logNo=80035470473
광복을
맞은 이의 감동을 담은 노래. 여기에는 '고국'이 어울린다.
이번엔 '모국'이 나오는 노래를 찾아보자. 그런데,
없다. 아니, 나는 찾지 못했다. '모국이여 안녕'이란 노래를 찾긴 했는데 제목만 그럴 뿐 노랫말에 '모국'은 나오지 않는다.
재일 교포 이순애(일본 이름 '오시마 준코')가 '모국 방문 기념'으로 '아세아
레코-드'에서 '취입'한 음반이다. 훗날 '파랑새 자매'도 부른 이 노래, 알고보니 '깜~빡. 깜빡. 깜빡. 깜~빡...'을 반복하는 바로 그
노래였다. 어쨌든, 여러차례 노래 반복해 들으며 '채록'한 노랫말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드림.. ...밤은 깊어 바람에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 검푸른 실 고향 꿈이 그리워 태평양 바라보며 꽃구름도 파랗네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깜빡 아아
애달픈 차이나 거리< '모국이여 안녕' 1절 >
재일'교포'가 '모국'방문 기념으로 내놓은 음반.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을 목이 터져라 외치던 중계 아나운서. 다음엔 '동포'와 '교포'의 다름과 같음을 풀어보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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