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끼적거리려 했던 얘기, 이제야 옮깁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지요? 여러분 댁내 두루두루....
'계절의 여왕'이란 5월을 지나 유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며칠 뒤면 현충일, 또 가신 이를 추모하는 날. '조국과 겨레위해 목숨을 바친 이....'로 시작하는 현충일 노래도 입가에 맴도네요. 국립현충원도 떠오릅니다. 거기 굳이 모시지 않아도 될 이도 안장되어 있는 게 걸리긴 합니다만....어쨌든,  인사 말씀은 여기까지. '어린공주B612'님을 위해서라도 '분위기' 바꿀 때가 되었으니까요 ^^

  지난주에 책 들여다보다 정신 퍼뜩나게 한 대목이 있어서 옮깁니다.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 속에 담아두던, 사회생활하면서 느끼던 그 무엇을 옛문장을 통해 시원하게 짚어 준 내용입니다.

  조선 전기 성리학자 김종직이 과거에 떨어지자 속이 되우 상했던 모양이다. 허공에 대고 쑥덕질하는 대신 그는 시 한 수로 분을 삭인다. 

   雪裏寒梅雨後蘭   看時容易畵時難    설리한매우후란  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詩人眼   寧把연脂寫牧丹     조지불입시인안  영파연지사목단 

  매화나 난초 같은 글을 지어 올렸는데 빙충맞은 시험관이 그걸 몰라주니, 오호 애재. 이밥으로 개밥 차린 꼴. 김종직의 심회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맞다. 안목 없는 자가 어찌 눈 속 매화의 절개와 비 맞은 난포의 기품을 알리요.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못 읽는 법이다. 매화와 난포는 범수(凡手)도 그리지만, 절개와 기품은 고수의 몫이다. < 손철주, '그림 보는만큼 보인다' , 2006,21쪽> 

  배운 거 많지 않고 들은 거 또한 많다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나잇살 붙으며 깨달아 나가는 게 있습니다. '수준이 맞아야 한다'는 거지요. '척 하면 삼천리'는 아니어도 말입니다. 15세기 조선시대 '선배'의 글에서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못 읽는 법'이라, 재밌는 얘기지요? 기왕이면 '유식한 도깨비'가 됩시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끝.

덧붙임 1 : 사실, 이 글을 여기 옮긴 까닭은 '동병상련'에서 비롯해서만은 아닙니다. 밑줄 친 낱말이 살갑기도 해서이지요. 시원한 뜻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끼적거리다 : 흔히 '끄적거리다'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끼적거리다'의 잘못이라 하네요.
 - 되우 :  아주 몹시, 되게, 된통
 - 쑥덕질 : 숙덕질의 큰 말. 숙덕질은 '여러 사람이 모여 저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짓'이니 '숙덕숙덕''숙덕공론'도 한줄기의 표현이네요.
  - 빙충맞다 : 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으며 수줍음을 타는 데가 있다. 
  - 이밥 : '입쌀'로 지은밥. 입쌀은 멥쌀. 우리가 흔히 먹는 쌀밥. 잡곡 섞이지 않은 밥.

덧붙임 2 :  김종직이 지었다는 한시는 김굉필(金宏弼)의 '목단을 그림<寫牧丹,사목단>' 이란 자료도 있네요. 제 수준에서는 어느게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인용한 한시의 '연지'는 '연지곤지 바르고 눈썹 그리고...'할 때 연지입니다. 한자는 月+燕을 합한 글자에 脂입니다. 여기선 연지 '연'자가 나오지 않네요. http://hanja.naver.com/hanja.naver?where=brow_hanja&id=14179 참고하셔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