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이 먹고 싶을때가 있다.

어릴때는 도루묵을 자주 먹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도루묵 맛 보는 게 쉽지 않다. 도루묵 맛 제대로 보지 못한 거, 적어도 십수년은 된 거 같다. 먹고 싶을때 먹을 수 없어서 더 먹고 싶어지는지 모른다. '그림에 떡'이라더니 그 도루묵을 신문에서 만났다. '신문 속에 도루묵', 거기서 예전처럼 도루묵을 흔히 볼 수 없는 까닭을 비로소 찾았다. 일본에 수출하는데다 어획량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외화벌이'탓에 우리나라에서 먹기 힘들다니 안타깝고 '생태계 변화'로 잡히지 않는다니 마음 무거워진다.

   어머니가 해주신 도루묵은 '조림'이었다. 무 썰어넣은 자작한 양념국물에, 알 밴 도루묵 넣어 짭짤 매콤하게 졸여낸 도루묵 조림. 내가 좋아한 반찬 중의 하나였다. 먹을때마다 꾸둑한 느낌으로 톡톡 터지는, 몸집에 비해 굵은 알의 씹히는 느낌이 색달랐고 졸여낸 살 발라낼라치면 여느 생선과 달리 갈매기 형상으로 살점 떨어지는 모양새도 신기했다. 도루묵이 밥상에 오를때면 '도루묵에 얽힌 전설'도 좋은 '반찬거리'였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도루묵의 기구한 운명(?)은 이랬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래된 옛날에 임금님이 피란길에 올랐다. 어느 어촌에 당도해 수랏상을 받았는데 도루묵이 진상되었다. 임금님이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 피란을 마치고 궁궐에 돌아온 뒤 '그때 그 맛'이 생각난 임금님. 그 생선을 상에 올리라 명하셨다. 수랏상에 다시 오른 도루묵을 임금님이 먹어보니 '그때 그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신 말씀, '도로 물러라~'. 그래서 생선 이름이 '도루묵'이 되었다는 얘기.

   우리 '어머니의 원전'은 그랬다. 임금님은 선조, 때는 임진왜란이란 건 나중에 책을 보고 알았다. '도로 물러라'해서 도루묵이 아니라 '(은어라 하지 말고)도로 묵이라 불러라'해서 그리 되었다는 설은 이번에 신문보고 알았다. 당시 귀한 생선은 '은어', 흔한 생선은 '묵'이라 불렀다는 사실도 함께. 어느 게 정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수백년전 '작명'된 생선 이름의 기원을 어찌 확실히 알겠는가. '도로 물러라'해서 그리 되었든, '도로 묵이라 해라'해서 도루묵이 되었든 맛은 변함이 없으니 '도루묵 이름의 기원'은 이쯤에서 접어두자.

   이번에 내가 새롭게 안 내용이 하나 있다. '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개명(改名)당한 생선' 도루묵과 관계 없다는 설(說)이 그 거다. 도루묵은 도로무익(徒勞無益)이 변해서 되었단 얘기. 도로무익은 '헛되이 애만 쓰고 아무런 이로움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이니 그럴듯 하다. 출전불명인 '도로무익'에서 '(말짱) 도루묵'이? 억지로 꿰맞춘 느낌 없지 않다. 문자쓰는 거 좋아하는 이들이 한자 끌어다 붙인 냄새가 폴폴 풍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도루묵 이름 따져본 게 말짱 도루묵이 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 도루묵을 먹고 싶을 뿐이니까 말이다. 요즘이 '도루묵 철'이라는데, 나는 어디서 도루묵을 먹어야 하나. 그 게 문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