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짓 많이 합니다, 저는.

저는 그냥 하는 짓인데, 보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게 많다는 거지요. 그 '엉뚱한 짓'을 어제도, 오늘도 또 했습니다.

  어제 야외 녹화에 함께 나선 동료 아나운서가 '우리 작은 애랑 - 큰 애도 아니네요 ㅠ.ㅠ - 똑같이 논다('눈높이가 똑같다'했지만, 속뜻은 '..논다'였겠지요)'는 얘기를 해도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애 아빠는 아이랑 달라야 한다, 이게 자연의 법칙은 아니니까요. 가끔, 아니, 자주 '유치한 짓'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저를 보고 언젠가 제 딸아이는 '아빠, 유치해~'한 적 있습니다. 제가 뭐라 답했는지 아십니까? 일단, 한번 씨익 웃어준 뒤. '그래, 아빠 유치해~'했습니다.

  오늘 제가 한 '짓'도 유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점심 무렵, 여의도 엠비시 본사 사무실에 있는 '공용 문구 서랍'을 열었습니다. 사인펜, 칼, 포스트잇, 테이프 따위가 있는 서랍이지요. 거기서 제가 뭘 꺼냈을까요. 연필입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연필을 만져보고 싶었으니까요. 서랍 속엔 빨강, 파랑, 까망의 색색가지 사인펜 수십자루, 형광펜과 샤프 펜슬이 여러 자루, 그리고 연필은 다섯 자루가 있었습니다. 고동색 연필 네 자루, 파란색 연필 한 자루. 파란색 꺼냈습니다. HB연필. 국산입니다. 어제 분장실에 굴러다니던 독일제 4H연필 생각을 만지작거린 뒤의 일입니다. 그냥 연필을 깎고 싶었습니다. 칼 하나 들고 연필을 비슷하게 잡아 조심스레 깎아내렸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수십년전 제 필통에 연필깎아 넣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참 고왔던 우리 엄마, 외출할때면 분홍빛 한복으로 차림하셨던 모습도 눈앞에 떠오릅니다. 그래, 나도 연필깎아서 우리 아이들 필통에 넣어볼까, 이런 생각도 언뜻 들었습니다. 실행여부는 두고 봐야겠지요~ㅋ

   오늘 깎은 연필, 이렇게 생겼습니다.

  제법 뾰족하게 다듬었다 싶었는데, 찍어놓은 사진 크게 보니 '연필심'이 뭉툭하네요. 뒷편의 '샤프'는 찬조 출연입니다. 연필심과 견주니 끄트머리의 예리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샤프'는 '깎을 필요'없는 연모입니다. 그래도 '손수 깎는'재미에 '나무'만지작 거리는 느낌은 '샤프'에 비할 바 아닙니다. 때로, 불편한 것이 아름답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