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청중이 실내악을... 2006.12.10

  뭐, 그랬던 거 같습니다. 꽤 오래전 음악잡지 '객석'이 내세운 표어가 그랬지요.

'성숙한 청중이 실내악을 듣는다'쯤 되었을 겁니다.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그에 담긴 뜻은 분명 그랬지요. 일리있는 얘깁니다. '실내악을 들으면 훌륭한 청중'이라거나 '실내악을 듣지 않으면 미숙한 청중'이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거, 물론입니다~ ㅋ

 

  조금전 신문 뒤적이면서 '성숙한 인간은 비유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략) 남정현의 장편소설 '분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이 되고 말았다. '계급의식과 반미 감정을 조성함으로써 북괴의 대남 전략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검사가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검사가 물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이라 보지 않는가?' 증인은 문학 평론가 이어령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소설 '분지' 필화 사건> 

 

  180명의 피고인들이 항소심 법정에서 애국가를 부르자, 재판장은 모두 퇴장시킨 채 변호인에게 변론하가고 명령했다. 변호사는 입을 열었다. '나는 피고인들을 변호하러 여기 왔지, 빈 의자를 변호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긴급조치 4호 민청학련사건>

 

  한 일간지 '북 섹션'에 나온 글이다.

짧지 않은 세월을 '말쟁이'로 '말발'로 버티며 살아온 나, 이어령(호랑이 얘기)과 한승헌(빈의자 변호?)의 '내공'에 맞설 재간 없다.

 

  '소설속의 내용이 반국가적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소설은 개연성있는 허구로 실제를 담아내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 한들 행간의 맥락을 파악하여 용공과 좌익의 혐의를 찾아야 할 터, 글 전체의 흐름과 그에 담긴 사상을 종합적으로 미루어볼때 체제전복을 꾀하는 계급의식과 반미 감정의 조장을 선전-고무한다고 속단할 수 없습니다....'처럼 장황하게 나도 모르는 얘기를 주절거렸을 거 같다. 내가 당시 증인이었다면 말이다. 애국가 불렀다고 퇴정당한 변호인을 변호하기 위해 '애국가를 부르는 게 소란스러워 임의 퇴정시킨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 아니나, 애국가를 부르는 게 법정 모독이 될 수 없다고 사료되는 바, 재판장님의 혜량을 기대하며 재고해주시기를 앙망하는 바옵니다. 또한 피고인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훗날.....'이렇게 문장 길게 길게 늘이며 내용없는 주절거림을 되뇌었을 거다.

 

  말은 길게 한다고 잘하는 거 아니다. 글도 늘인다고 명문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담는다면, 짧은 문장이 명문일 가능성이 높다. 적절한 비유로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 촌철살인. 간명한 것이 아름답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