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강재형의 '우리말 일기' 마흔넷째 일기다. 단기 4339년 7월 7일, 서양 사람이 좋아하는 '럭키 세븐'이 두번 겹치는 날, '일기 44'를 쓴다. 우연의 일치치곤 나쁘지 않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좋다'하는 거, 좋은 거다.

   '아름다운 번역'을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위해 긴 문장을 끌어 옮기려 한다. 지루하더라도(?) 찬찬히 읽어주시기 바란다. 글 내용도 쓸만하다. 자, "'물의 문학' 공부하세요"란 제목을 단 글 함께 읽어보자. 내 맘대로 생략해 올린다.

  이학에 속한 학문 중에 문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달고 있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몇 년 안 된다. 물의 문학이라는 뜻의 '하이드롤로지(hydrology)'를 우리말로는 수문학(水文學)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번역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처음에 우리나라에 수문학을 도입한 학자들이 대단히 낭만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수문학 공부를 한 것은 정말 순전히 학문명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중략) 물의 학문과 땅의 학문이 만난 접경에 응용수문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학문에서는 지하수를 다룬다 (중략) 암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지하대수층의 세계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중략)... 땅의 공간을 흐르는 물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층에서 40층 이상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이 지하대수층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중략) 그래서 대부분의 응용수문학교과서는 지하대수층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략)  지하대수층을 잘못 건드려서 곤란하게 된 도시가 최근의 상하이인데, 1년에 지반이 몇 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중략)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실질적으로 7층 이상의 건물은 올리지 않으므로 지하대수층과는 상관이 없고, 꼭 올려야 하는 경우에는 지하대수층에 대한 정밀조사로 영향 평가와 회피 방법에 대해서 다각도로 검토하고 올리게 되었다 (중략) 잠실 롯데월드에 제2롯데 월드를 '겁나게' 올린다고 하고 있는데, (중략) 자신들이 집 짓는 데 전문가이고 세상에서 집을 제일 잘 짓는다고 자랑하기 전에 물과 땅 그리고 하늘을 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잠깐의 낭만적 시간을 가져 준다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언제 지하수가 꺼져서 자기 아파트가 무너져내릴지 불안에 떨진 않을텐데. (중략) 지하대수층이라고 불리는 수문학의 대상이 이제는 도시관리와 건설행정에 포함되어야 할 순간이 왔다. 잠재된 서울의 욕망이 이제 하늘로 폭발하기 시작해기 때문이다. (끝)<한겨레 신문 2006년 7월 7일, '책과 지성 섹션' 22면>

   옮겨 놓고 보니, 진짜 길다. 원작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깍아내지 않는 선에서 줄였으니 내용도 다시 살펴 읽어보시기 바란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땅 속 흐름'무시하지 말고 함부로 '개발'이란 이름으로 우리 '삶의 터전'을 자본으로 재단하지 말아라, 이런 뜻을 담은 글이다. 나도 글쓴이의 뜻에 동의 한다. 자, 이제 '우리말 일기'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

   밑줄 쫙 그은 낱말에 주목하자.

이학, 수문학, 지하대수층, 낭만.... 원작자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이라 했다. 아쉽지만, 아니다. 일본 사람이 번역한 한자어를 받아 쓴 표현이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얘기한 기억이 어렴풋하다. 일본이 만든 표현이니 쓰지 말자, 이런 주장하려는 거 절대 아니다. 누가 만들었든 제대로 잘 받아 더 잘 쓰면 그만이다. 일본에서 왔으니, 일본에서 유래했으니, 일본냄새가 나니, 이런 '소아병적'발상은 접어두자는 게 내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소아병적'이란 표현도 일본에서 만든 냄새가 짙다. 우리 국어사전에 '소아병'은 그저 '어린아이들이 걸리는 병'으로만 나와 있으니까. 아, '소아'도 혹시? 끝.

덧붙임 : 영어사전에는 '소아병'이 'infantilism의 뜻으로 비유적으로 쓰임'이라 나온다. '인팬틀리즘(infantilism)'은 '어린아이 같은 언행'을 뜻한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