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6 직후 한달간 정신병원 감금 당해'
신문에 실린 가수 심수봉의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독특한 음악성과 가창력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심수봉. 십이륙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일, 현장에 있던 '그때 그 사람'으로 역사에 남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얽히고 ?鰕? '인맥'을 따지면 내 '형수님'이기도 하다. 그가 뒤늦게(?) 털어 놓은 얘기는 우리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여서, 그 이유 보다는 '그때 그 사람'이기에 더 그럴 것 같다.
- 사건 직후 계엄사에서 조사 받다가 한남동 정신병원으로 끌려가 한달 동안 갇혀있었다
-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등장인물과 같은 생활을 했다
- 계엄사 조사 당시엔 심령학자가 입회했었다.
- 어머니 역시 함께 고초를 겪었다....
인터뷰에서 새롭게 밝힌 사실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권력의 싸움판에 어찌어찌하다 끼어든, 제 뜻과는 상관없이
휘말려, 정치판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노래도 부르지 못했던 가수. 게오르규가 쓴 '25시'의 주인공 '모리츠'를 떠올리게 한다.
'10.26'이후 이십몇년이 흘렀다. 그 자리에 있던 가수의 얘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위 내용을 다룬 기사의 시작은 이렇다.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에 있던 가수 심수봉(51)씨가 이후 정신병원에
끌려가 한 달간 감금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첫 문장을 읽으면서 답답했다. 여전히 '대통령 시해'란 말이 횡행하다니, 이런 생각이 든 탓이다.
시해(弑害)는 '임금이나 아비를 죽임'이란 뜻이다.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군주제 나라에서 임금을 죽인
신하가 하는 짓이 '시해'이다. 18년 동안 '절대독재자로 군림'했다 해도 나라의 임금일 수 없다. 사건 당시 (사실상 임금격인?)대통령을
어버이로 여겨 '시해'라 했을지 모른다. 좋다, 그럴 수 있다고 덮어두자. 그런데, 지금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놓고 갑론을박, 할 얘기 들을 얘기 많은 때다. 근현대사의 주인공과 장본인을 '제대로 바로 평가하자'는 논란이
거센 때다. 역사 기록의 표현은 평가 만큼이나 중요하다. 안중근의 '테러'를 '의거'로 기록하면 '의사'가 되고 '반역'으로
표현하면 '반역자'가 된다. 그래서 '시해 당한 박정희'는 '분하고 억울한 역사 속 인물'이 된다. '신하의 흉탄에 목숨 잃은,
백성의 오열 속에 잠든 군주'를 후세에서 어찌 평가해야 할까....
'민비 시해 사건'은 또 뭔가.
명성황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의 황후로 일본 망나니에게 무참히 살해된 '국모'다. 서기 1895년, 을미년에 유명을 달리한 뒤 폐비되어
'비'로 격하되기도 했다. '민비'는 명성황후의 폐비 이후, 복위까지의 엇나간 시절의 표현일 뿐이다. 그래, 바로잡자. '명성황후 시해
사건'하면 될 일? 이 또한 아니다.
'시해'는 '임금이나 어버이를 죽임'이라 했다. 임금, 황제와 황후를 그 나라 백성,신하가 죽이면 시해가 맞다. 근데,
명성황후가 당한 참변은 일본인이 저질렀다. '민비 시해'란 표현이 '일본은 대한제국의 속국'이란 시각에서
비롯했을리 없다. 오히려 '이 왕가(조선왕조를 '이조'라 폄한 일본이 붙인 명칭)에 반하는 힘 없는 백성의 뜻이 '보호국'인('을사보호조약'을
떠올려보자, 이 또한 역사에서 지워야 할 표현이지만) 일본의 무력으로 행해진 일'로 교묘히 위장된 표현이 아닐까.
말은 의사소통의 기본수단이다. 언어는 생각의 기본 틀이며 존재의 집이다.
'독립군'과 '반란군'의 행위는 같아도 그 안에 담긴 뜻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통령 시해'와 '민비 시해'도 '죽임'은 같지만
내포된 의미는 전혀 다르다. 모호한 예우(?)를 앞세워 어설프게 골라 쓴 용어는 본질을 호도하기 쉽다. 이 경우엔 감상이나 주관을
뺀 '살해'가 오히려 낫다. 군살빼기는 역사 속 표현에도 필요하다.
덧붙임 : 심수봉이 내 '형수님'인 거, 맞다. 문화방송 라디오 피디(나보다 입사 빠른 선배)의 부인이니까. 형수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여러분께 드리는 글쓰기에 '내 관계'를 앞세울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을 그렇게 부르듯 선배 부인도 이름만 넣었다. 내 감상, 주관을 뺀
표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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