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길다' 중에 어느 게 더 길까. 하나? 아니면 길다? 정답은 없다. '하나'가 얼마나 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길다'가 더 긴 게 맞을 거 같지만 말이다. 이상하다고? 글쎄, 한번 따져보자. 길게 뽑은 엿가락 두 개를 이어도 더 긴 엿가락 하나만 못 할테니까. 길게 찍은 장면 하나가 그냥 긴 장면 여럿 붙여 놓은 거 보다 더 길 수 있다는 얘기다.

   오늘 영화 한편 봤다.

삼월 삼십일에 개봉한다는 영화 '마법사들'. 진짜 마법같은 영화였다. '설마'했는데 '역시'인 영화였다. 출연배우 다섯명. 설마, 했는데 진짜 그랬다. 여1, 여2, 여1의 남친(남자 친구), 여2의 남친, 스님 1. 이렇게 달랑 다섯 명만 출연한 영화다. 장면(?)은 딱 하나. 컷 하나로 찍은 영화. 설마 했는데, 그 또한 진짜 그랬다. 단편 아닌 장편, 무려 한시간 반이나 되는 영화를 컷 하나로 찍었다.

   감독 송일곤. 각본도 감독이 직접 썼다. 한시간반이나 카메라 들고 쫓아 다녔다, 촬영감독이 무대인사에서 한 푸념 아닌 푸념이었다. 카메라 돌린 뒤 한번도 끊지 않고 찍은 영화가 또 있을까, 감독에게 물으니 '대한민국 최초'란다. 그 걸 드러내기 위해서였을까, 영화에 나오는 맥주는 '기네스'였다. 그래서 '기네스'맥주를 소품으로 썼니, 했더니 감독의 말은 뜻 밖이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맥주여서 그랬단다. 이번엔 '혹시'했더니 '설마'의 여운을 남긴다. 영화 끝난 뒤 뒷풀이에서 들은 얘기다.

  감독 송일곤은 내 학교 후배다. 사진보다 훨씬 젊고(?) 잘 생겼다 ^^

어찌어찌 알고 시사회에 와달라는 얘기를 듣고  일정 바꿔 극장엘 갔다. 모자 눌러 쓴 헌칠하게 잘 생긴 남자가 나를 반긴다. 오랜만이란다. 그래, 십년도 훨씬 전에 만났으니 그럴만 하다. 재형이 형은 하나도 안 변했어요,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인사말로 그와 나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내 어릴적 기억을 해주는 고마운 이, 그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학교 동창이 되어 나를 만났다.

   영화 얘긴 뒤로 미루자. 아니, 궁금한 이는 직접 보시기 바란다. 흥행성과 예술성을 떠나 '한 커트로 영화 한편'이 가능한지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영화를 본 소감은 내 블로그 '문화생활'에 따로 남기려 한다.

   '긺' 그리고 '하나'

이 글의 제목이다. '긺'이 '장면 하나'보다 훨씬 더 길다는 걸 견주기 위해서 뽑은 제목이다. 근데 '길다'의 명사형이 '김'이 아니라 '긺'이라고? 그렇다. 

   살다 - 삶

   베풀다 - 베풂

   알다 - 앎 

   길다 - 긺

   이렇게 변하는 게 맞다. 기본형(으뜸꼴)의 어간이 'ㄹ'로 끝나면 뒤에 'ㅁ'이 붙어 명사가 된다. 낯설긴 해도 어려운 거 아니다.

   영화 얘기 하다가  '명사형'얘기하니 낯설지 모르겠다('낯설다'의 명사형은 '낯섦'이다). 내 됨됨이를 아는 이는 낯설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들러다 가는 이를 위해 다른 얘기로 마무리 하려 한다. 한때 아나운서, 지금은 영화배우인 여자 후배 얘기다.

   영화 배우 임성민. 전직 케이비에스 아나운서다. 극장 앞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만이다, 첫말은 감독을 만났을 때와 같았다. 얼굴 좋아졌네, 했더니 맞다고 맞장구 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범상치 않았다. 길을 바꾸니 얼굴이 피더라, 내 길은 지금 이 게 맞다는 얘기였다. 신기(神氣)있는 사람은 그 길을 가야 한다며 그가 내게 덧붙인 말은 '선배님은 외줄 타세요'였다. 외줄이라, 그 줄이 뭔지 여러분은 아시는가....

덧붙임 :

* 세계에서 진기한 기록을 모아 내는 책 '기네스북'은 술도가 '기네스'에서 처음 만들었다.

* 송일곤이 나온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 출신를 로만 폴란스키도 졸업했다.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감독이다.  

* 영화 '마법사'는 96분짜리다. 물론 '한 컷짜리 영화'이다. '컷'과 '커트'는 같은 영어지만 외래어 표기가 다르다. '컷'은 영화에서 쓰는 말, '커트'는 커트머리, 커트하다 처럼 그 외의 뜻을 담고 있다. Cut가 태평양을 건너니 '컷'과 '커트'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