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는 '책갈피'가 아니다 2006.03.19 오랜만에 인터넷 서점에 들렀다. 세상사 바쁘다며 - 사실은 '바쁘다는 핑계'일 뿐이지만 - 책방 들르는 재미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문화방송 구내서점인 '문화서점'은 그동안 약속장소로만 거쳐 가곤 했다. 반성한다. 책읽는 즐거움, 그걸 '메멘토' 주인공 마냥 까맣게 잊고 지낸 걸.... 서점에 들르니 '책 아닌 책' 광고가 눈에 띈다. '건망증 캡슐 북'이란 거다. 건망증 캡슐 북? 건망증 있는 이를 위해 만든 거는 짐작이 간다. '캡슐북'이라, 책을 캡슐에 넣어 들고 다니란 얘긴가 싶었다. 또는 '타임 캡슐' 같은 것? 그건 아니었다. 상품 설명을 대충 보자. ♣ 책 40권을 캡슐북에 정리하자. 책을 읽을때 책갈피로 사용하면서 기억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여 나만의 책 요약집을 만들 수 있다. ♣ 고안의 이유 책을 읽다 보면 기억에 남기거나 인용하고 싶은 문구나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다이어리다. ♣ 사용방법 책을 읽는 사람은 책갈피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 책갈피로 사용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대충 보시었는가. 건망증, 기억, 인용,문제 따위를 늘어놓은 거 보면 나같은 이에게 딱 맞는 물건이다. 하지만, 아직(?) 쓸 생각은 없다. 괜한 짐만 될 거 같아서다. 상품 소개는 이쯤에서 접고 굵은 글씨를 트집 잡으려 한다. '트집'이 이 글의 목적이다. ^^ 먼저 영어 북마크(bookmark)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북마크 = 책갈피'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bookmark? '서표(書標);장서표(藏書票)(bookplate), 갈피표'로 나온다. 다음엔 국어사전을 찾자. 서표 :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갈피에 끼워 두는 종이 쪽지나 끈. ≒갈피표 장서표 : 자기 장서임을 표시하여 책에 붙이는 표. 갈피표 : = 서표 * 끈으로 만든 서표는 '갈피끈(=가름끈)'라 한다. <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편> 어라, 그렇다면 책갈피는 뭔가. 책갈피 : 책장과 책장의 사이. (보기) 은행 잎과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놓았다./책갈피에서 옛날 사진이 나왔다./한 장 한 장 책갈피를 넘길수록 선명해지는 추억의 알록달록한 풍경….≪박경리, 토지≫ 그렇다. '건망증 캡슐북'의 상품 설명에 나온 '굵은 글씨'는 '갈피표, 서표'라 하는 거였다. '북마크 = 갈피표'가 맞는 표현이다. 에이, 다들 책갈피를 그런 뜻으로 알고 쓰니 대충 넘어가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상큼하다'가 그랬다. 옛날 국어사전엔 그저 '아랫도리가 윗도리보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길쭉하다 < 성큼하다'만 올라 있었을 뿐이다. '냄새나 맛 따위가 향기롭고 시원하다, 보기에 시원하다'는 뜻풀이가 없었다. 언중이 널리 쓰는 '상큼하다'의 뜻이 사전에 오른지 이제 십여년이다. '사전 따로 말 따로'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사전에 오른 말만 써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익숙한 '책갈피'와 낯선 '갈피표' 도마 위에 올린 까닭은 다른데 있다. 말은 의사소통의 기본이니 '정확한 뜻'을 전하기 위해 사전찾기를 게을리 하지 말자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사전이 잘못되었다고? 말은 '늘 살아 꿈틀대며 진화하는 것'이어서 문법과 사전은 늘 '뒷북'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뒷북치는 사전'을 팽개쳐두고 '앞북'치며 무심히 살아가는 건 문제다. 덧붙임 1 : 영어사전 없는 집, 거의 없다. 국어사전 없는 집, 더 많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덧붙임 2 : '다이어리'는 왜 굵은 글씨? '업무수첩 한 권 줄래?'라 얘기한 내 벗이 생각나서이다. 그 벗은 십년 넘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사업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