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그것이 알고싶다 2006.03.01 20세기의 마지막의 해, 서기 2000년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제목은 '문익점은 밀수꾼?'이었습니다. 제목이 좀 거칠었지요?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께 누가 안 되었으면 합니다. 현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밀수'로 간주될 터인데.. 법이란 건 사회를 통제하고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을 한껏 누리는 이들이 만들어 낸 제도에 불과할 지 모른다고 누군가가 얘기했습니다. 위에 주절거린 '밀수'에 대한 생각 한번 더 하시면서 아랫글 읽으면 '밀수꾼' 어쩌고 한 제 말장난(?)이 악의에서 비롯한 게 아님을 아실거라 믿습니다. 그럼, 다음 글을 읽어 볼까요? --------------------- 서기 2000년, 단기 4333년 1월 ??일. 여러분과 글쓴이가 처음 만나는 날이다. 문화방송의 아나운서가 문화일보의 독자를 만나는 날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문화' 없이는 왠지 첫 얘기가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니 '문화' 핑계 삼아 여러분과 첫 만남은 문화에 어울리는 것으로 하려한다. '문화'하면 떠오르는 게 글(書)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한들 글 없이는 그 '말씀'이 지금껏 전해지지 못했을 터이니 그렇다. 글을 쓰기 위해 빠질 수 없는 게 필기구.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엉뚱하게 문익점을 떠올린다. 고려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수'해 온 주인공인 문익점. 그가 이용한 '밀수 도구'가 바로 필기구 아닌가. 문익점이 목화씨를 숨겨온 것이 누구는 붓대라 하고, 누구는 '붓뚜껑'이라 한다. 육백여년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그 시비를 가리기는 불가능한 일, 아무렴 어떤가. 붓대나 '붓뚜껑'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아니다. 붓대는 '붓의 촉을 박고 글씨를 쓸 때 손으로 잡는 가는 대'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붓뚜껑'이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뚜껑은 '온갖 그릇의 아가리(그릇 따위의 속으로 통하는 구멍 언저리를 일컫는 말이다. 입을 천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를 덮는 기구'일 뿐이다. 바른말은 '붓두껍'이다. 우리나라 목화밭은 문익점이 붓두껍에 숨겨 들여온 목화씨에서 비롯했다 - 이렇게 해야 바른 말이 된다. 어쨌거나 문익점은 목면을 보급한 공으로 1375년(우왕 1년), 1389년(창왕 1년)에 왕이 바뀔 때마다 벼슬을 했다. '목화씨 밀수' 얘기는 문익점의 약력과 사적을 기록한 필사본 '목면화기(木棉花記)'에 자세히 나와있다. 역사에 조예도 깊지 않은 이가 너무 아는 체를 했나? 그렇다고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며 타박하지 마시기 바란다. '문자'의 바른 쓰임을 밝히기 위한 복선이니 말이다. 같은 문자(文字)라도 글자의 뜻일 때 발음은 [문짜],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숙어나 경구를 가리킬 때 문자(文字)의 발음은 [문자]가 맞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다', '선인의 [문자향](文字香)'이라 해야 우리말에 진짜 조예가 있는 사람이다. 끝. 덧붙임 : 벌써 오래전일이네요. 위 글을 다시 퍼다 옮기고 보니, 이 글을 쓴 때가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때, 몇달 동안 문화일보에 정기기고를 했었지요. 즐거움도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움 또한 없지 않았답니다. 매주 뭔가를 써내야 한다는 거....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