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만에 현대미술 따라잡기’, ‘미술투자를 위한 십계명’, ‘죽기 전에 꼭 봐야할 명화’ 등등. 책이며 각종 포털사이트며 요즘에는 사방에서 미술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는 것 같다. 평소 미술, 그것도 현대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져 달라며 백방으로 호소하던 나이지만, 가끔은 자본이라는 달콤한 오발탄에 맞아 숨지는 미술이 생기지는 않을까 요즘 같아서는 내심 걱정스럽다. 혹여라도 그렇게 불행히 숨을 거두는 미술 앞에는 어떤 묘비명이 새겨질까.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처럼
“우물쭈물 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미술에 대한 갑작스럽고도 과도한 관심이 아마도 염려스러웠는지 자꾸만 삐딱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처럼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정도의 묘비명은 새겨져야 미술의 체면이 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가을이었다.
누구나 인생의 슬픔과 연애하는 시절이 있듯, 나 역시 마찬가지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35㎞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 (Auver sur Oise)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하숙집이었다는 오베르즈 라부(Auberge Ravoux)의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랐다. 빛이라고는 좁은 계단 옆에 난 아주 작은 타원형 창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3층 다락방에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상징하는 작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기념으로 그 방을 찍으려고 했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난간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겨우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석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어떻게 100여점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자꾸만 먹먹해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의 무덤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그린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의 밀밭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대로가 하나의 근사한 풍경이고 찍으면 바로 예술사진이 되는 풍경. 그러나 반 고흐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대상에서 받은 자신의 느낌으로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려냈다. 그의 ‘부정확성’을 그 시대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로 하여금 바로 그 밀밭에서 스스로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밀밭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꽤 큰 공동묘지가 보였다.
멀리 정성스레 대리석 무덤을 닦는 할머니도 보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반 고흐의 무덤을 알리는 표지는 없었다. 그러다 여기저기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과 도자기 꽃 장식들 사이로 가장 초라한 무덤이 눈에 띠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화려한 묘비명도 없이 ‘빈센트 반 고흐, 여기 묻히다’가 전부인 작은 묘비. 옆에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난 동생 테오의 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두 묘비를 장식하는 것은 푸른 아이비뿐. 아이비는 프랑스에서 ‘정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 푸르름에 눈이 시렸던 것일까.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그가 지새웠을 수많은 불면의 밤, 붓 끝에 담았을 그의 여윈 영혼은 오랫동안 나의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한참이 지난 뒤, 무엇인가 따스한 손길이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작고 초라했지만 내가 본 가장 고귀한 무덤이었다.

 반 고흐의 말대로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듯이 그는 그런 예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죽어서 묻혀버린 예술가는 오직 자신의 작품으로만 다음 세대에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다음 세대의 영혼을 구원하기도 한다. 반 고흐의 진정한 묘비명은 비석이 아닌 나의, 우리의 영혼 속에 새겨진 것이다.

 어떤 작품이 확 오를지 콕 집어 달라는 질문이 쇄도한다. ‘젊고 요절할 작가! 그러니까 평소에도 작가의 건강을 잘 체크하라고!’라며 우스개로 대답해 놓고 나니 37살의 나이에 요절한 반 고흐의 무덤이 자꾸만 떠오른다. 오랜 세월 ’행복‘보다 ’꾸준함‘을 선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가지 잣대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란스럽지 않게, 예술가들만큼의 꾸준함으로 작품을 찬찬히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시대 반 고흐들의 가슴에 투자의 방아쇠 대신 당신의 푸른 숨결이 느껴지도록 그윽한 애정을 먼저 보내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말:
뉴욕 연수중인 관계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방학을 맞아,
뉴욕의 현대미술에 관한 사진과 글들을 꾸준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