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누군가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보편타당한 생각, 혹은 그것을 한 뼘이라도 뛰어 넘는 선명한 지혜를 갖췄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일종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훤칠한 자아도취 같은 것이라도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분명히 내걸 경우, 재고에 삼고, 사고를 한 후에야 용기를 내 볼 일이다. 그런데, 앞의 조건들 중 하나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함이 자명한 나이지만 덥석...“하겠다“고 해버렸다.

그것은 마치 내 영혼을 깊이 잠식하고 있던 갈증에서 비롯된 무슨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았다. 무조건 항복, 투항, 나아가 감사의 흰색 깃발이었다. 약 5년 전 부터는 공식적으로 내 이름 석 자로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는, 아니 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줄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몰랐던 일종의 면죄부를 마주하고 있다고 덜컥 믿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해 보지 뭐..”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은 곧바로 스스로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고, 그것을 넘어 고작 내가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경솔함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값 싸고도 가증스런 청승이다 싶을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용기를 낼 수 있을 몇 가지 이유를 꼽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할 수는 있겠다.

나의 준법정신이 형편없다는 것이 판명 난 것과는 무관하게, 나는 아직도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꽤 많다는 점. 아울러, 이곳 방문자들 중 몇몇 분은 그것에 꽤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그 기대는 다시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반을 둔다.

내 인생의 족히 8할은 영화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TV와 라디오에서 영화 프로그램 진행자 역할을 한 것이 총 11년이며, 이 대부분의 기간을 나는 유난스럽게도 치열하게 보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 수년간 리뷰쓰기와 영화 전문지 별점 주기를 했으며, 세계 3대 영화제 현지 녹화와 칸 영화제의 경우는 혼자서 취재, 촬영, 편집, 진행을 했으며, 30 여명 이상의 외국 유명 배우, 감독과의 인터뷰, 국내 여러 영화제 개 폐막식 진행, 이제껏 본 영화 대략 3000 편... 등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또, 본의 아니게 전문가연하는 재수 없는 인물로 오인될 소지도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자신이 서야 할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자부하는데, 그곳은 평론가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과 일반 시청취자와의 중간 지점이다. 독자들이 나를 진정으로 받아줄 의사가 있다면 아마 이 점이 그 첫 번째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사실 나는 로저 에버트의 그 유명한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기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미국 시청자가 족히 천만 명은 됐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일찍이 숀펜도 “영화에 세 가지 이상의 철학을 담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뼈있는 조크를 날리지 않았는가?  만약 여러분이 MBC 6층 남자 화장실 중간 칸에서 “영화, 뭐 있어? 일단 재밌어야지..” 라는 낙서를 본다면 그 범인은 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렇다고 이 칼럼이 남보다 튀는 유일성만 내세우며 어쭙잖고 엉성한 시선 끌기에 몰두할 것이라는 짐작도 거두시길 바란다.  영화는 어차피 ‘이 시대’ ‘우리가 사는 모습’의 반영일진데, 그것이 다소 남루할지라도 실제 우리 삶의 얘기에 더욱 깊게 들어갈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는 앞서 말 한대로 영화에 대해 말하는데 무척 굶주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오랜 기간 솟구쳐 올랐다가 사라졌던 수많은 생각과 단어들을 추스르고 골라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겠으나, 그것이 즐겁게 기꺼이 수행될 것임은 분명하다. 끝으로 이 칼럼의 제목을 설명할 겸 결론을 맺자면, 어미 새가 정성스레 품어 알에서 새 생명이 깨어나듯이, 나 역시 공들여 품어 매주 새롭게 깨어나는 '영화와 삶의 이야기'를 지향한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