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차를 준비하며 분주히 손님을 맞는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유부들은 첫 만남부터 긴장 아닌 긴장을 했다.
뭔가 도와야 할 텐데...
그러나 금난새 선생님은 한사코 거절하며 정중히 우리를 맞았다.
예기치 못한 긴장은 금 선생님이 준비한 따뜻한 차로 이내 녹아내렸다.
그리고 곧 “인터넷을 쓰지 않습니다.”라고 운을 뗀 금 선생님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어투는 우리 유부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CEO로서 컴맹에 가깝다는 말에
살짝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을 쓸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1974년 국제 청소년 모임대표로 해외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
독일 베를린에 잠시 들러 무작정 라벤슈타인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공부할 곳은 어디인가 늘 고민하던 그는 한국에서의 모든 공부를 접고 베를린에 바로 눌러앉는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아 열심히 지휘공부를 하던 그는 스승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뒤 77년 카라얀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한다. 그 당시 1,2위를 차지했던 사람들은 이미 전문 지휘자. 학생이었고 지휘경력이 없었던 그가 3위를 한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한껏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그는 의외의 조언을 듣고 만다.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큰 도시보다는 한국에 가서 일하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엔 지휘과도 없는데 과연 돌아가서 뭘 할 수 있겠냐는 반문에 “일본의 발전 모습을 보니 한국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가라”는 기대치 않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고민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휘자로서 첫 출발을 내딛게 된다.

 여기까지가 언론에도 알려진 그의 이야기. 여기서 우리는 금난새 선생님의 남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계획한 것도 아닌데 무작정 찾아가는 배짱!
“스승과의 만남은 거의 매직이었답니다. 사전에 약속된 것도 아닌데, 내 전화목소리를 듣고 내일 그럼 우리 집으로 찾아 와라 했으니까...”
그럼 라벤슈타인 선생님은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이력도 알지 못하는 학생을 만날 생각을 했을까?
라벤슈타인 선생님 말씀이 “나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얼굴에 써있었다고 하네요.
그렇다. 두둑한 배짱 뒤엔 열정이 함께 하는 것이다. 선생님 성격이...?
겉은 괴짜가 아닌 것 같지만 속은 독특한 면이 있어요. 뭐랄까? 아웃사이더 성향? 남들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왕따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지휘... 저희에겐 생소한 세계인데요?
악보를 분석해서 해석해내는 거죠. 영화감독과 비슷하다고 해야 될까요? 연주자들과 어울려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거죠. 단원들은 많은 지휘자를 맞이합니다. 연주자들 다 콧대가 높죠. 그런 그들을 통솔하는 게 지휘자의 몫인 겁니다. 실제로 지휘자가 걸어 나올 때 단원들은 감을 잡는 답니다. 지휘자의 역량이 나타나는 순간인거죠.

 사실 지휘자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데, 앞모습을 그것도 오래~ 보여주시죠. 해설이 있는 음악회. 유부들도 한 번씩은 가봤기에 이야기를 꺼냈다.
“94년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시작한 겁니다.
베를린 유학에서 감동을 받은 부분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청중이 있다는 것이죠. 청중은 보물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오케스트라도 없지만, 그럼 청중도 있는가 하는 거죠.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주한다고 하면 열심히들 합니다.
근데 지방이나 소극장에서 하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죠.

 상대에 따라 그 애티튜드가 달라지는 거 그게 맘에 안 드는 겁니다. 5%정도 차이면 괜찮습니다만 그 차이가 큰 게 문제죠. 저는 KBS 지휘자 시절에 문화 혜택이 거의 없는 지방 중소 도시에서 하는 연주를 더 중요시했답니다. 물론 좋은 곳에서 해서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so what? 문화의 저변 확대가 중요합니다. 제가 기획한 청소년 음악회도 처음에는 반응들이 시큰둥했지만 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금난새와 함께하는 세계 음악여행’ 이렇게 바꾸고 시작했죠. 그랬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왔습니다. 아홉 번의 매진 사례가 있었고 6년을 계속한 거죠.”

 그러고 보니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많으시네요. “그것 말고도 94년에서 95년 넘어가면서 열린 재야 음악회도 원조입니다.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음악회를 보면서 한해를 마감하고 맞이하는 거 좋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12월 31일은 공연장이 쉬는 날이라 대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청중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해야 한다며 설득을 한 거죠.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재야 음악회가 탄생된 겁니다. 그리고 ‘전통은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랍니다. 나는 오늘의 이 재야 음악회가 하나의 전통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 말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결국 재야 음악회는 전통이 된 겁니다.”

  지휘할 때도 매력 넘치는 지휘자지만 역시 생활인으로서도 멋이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세팅이 잘못돼 있을 때는 직접 나서서 의자를 들어 옮긴다는 금난새 선생님은 늘 연극에 한 대사를 마음에 새기고 일에 임한다고 한다.
“이 말입니다. ‘당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무대 연기가 끝나고 나갈 때, 조명기사나 무대감독과 악수할 때 성공했음을 느낍니다.’ 우리 단원들에게도 이 말을 한답니다. 우리 스텝들에게도 늘 인사하고 악수하고 가라고, 작은 애정 표시는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혹시 인기 관리 차원에서 그러시나요? (^^)
괜히 말했네요, 하하하...
훌륭한 정책이나 생각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변할 수 있겠지만, 악수 하나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후진 양성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예전에 비해 학생들에게 애정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열심히 따르고 그래요.
날 추종하는 그런 후진 양성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도록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답니다.

  카라얀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지 30주년에, 환갑까지 맞이한 금난새 선생님.
이 뜻깊은 올해가 가기 전에 책도 출간된다.
기존에 나온 책들과는 달리 새롭게 구성했다는 그 책도 궁금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끝났다.
우리 유부와의 만남도 그가 만드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조그맣게나마 자리할 수 있을까? 말할 때도 지휘하는 것 같은 금난새 선생님의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이 아직도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답니다’로 어미를 처리하는 일명 ‘답니다체’의 금난새식 화법도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리워진다.
분명 우리 유부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다시 만날 때는 우리유부도 그런 매력과 내공을 갖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