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리 칼럼' 2007.03.30

대한민국 '메이저 신문' 가운데 하나. 거기 실린 '수석 논설위원'의 칼럼. 유감이다. '광고탄압'을 얘기한 내용 갖고 트집 잡자는 거 아니다. 자기 돌아보는 잣대와 다른 이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를 수 있다는 거 알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 이 글에 '일기'란 부제 달아 놓은 거 보면 알겠지만, 내가 꼬투리 잡는 거, 내용 때문이 아니라 문장 탓이다.

'중앙 일간지' 논설위원이면 글 잘 써야 한다. 아니, 맛깔스런 글은 아니어도 문장에 군더더기나 낯선 표현은 없어야 한다. 근데, 아쉬움이 남는 글을 남겼다. 신문에, 논설위원임을 내세워서 말이다. 어떤 게 문제?

'그래놓고 87년 역사의 **일보 등에 광고를 이용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 유신독재정권한테서 전수받은 수법이 더 교묘해졌다'

이 두 문장만 보자. 번역투, 한마디로 원래 우리말이 아니다. 다음처럼 써야 제대로 된 우리문장이다.

'... 광고를 악용해(사용해, 도구로) 탄압하고 있다' '...정권이 전수한(전해준, 가르쳐준) 수법이....'

앞 문장은 '탄압을 가하고 있다'할 필요없다. '탄압하다'로 하면 그만이다. 문장은 간결할 수록 좋다는 게 글쓰기의 기본이다. '이용(利用)'은 말 그대로 '이롭게 씀'이다. '이용해서 탄압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꼬치꼬치 따지면 '87년 역사의'도 '역사가 87년이된(87년이나 된)'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래 우리 표현엔 (특별한 경우를 빼곤) 숫자가 뒤에 나오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뒤 문장 또한 피동태 표현으로 영어 직역투이다.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이 떠오른다. 당대 최고의 성가를 누리던 그는 글에 담긴 깊은 뜻만으로도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같은 시대 언론인들의 '표상'이었다. 그의 문투를 흉내내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그랬던 그도 '직역투','왜색 문장', '겹말'임을 알면 바로잡았다. 그의 글버릇이었던 '...에 다름아니다'가 어느날 사라졌다. '왜색(倭色)문장'이란 걸 안 뒤였다.

좋은 글은 반듯한 문장에서 비롯한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 좋'듯, 널리 알리고 밝혀 퍼뜨리기 위한 생각도 깔끔한 문장으로 드러내야 제 격이다. 말과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이 빠진 접시나 덕지덕지 때 묻은 사발보단 허름하더라도 정갈한 그릇에 담긴 음식이 먹음직스럽다. 먹고살만할 수록 더 그렇다. 자부심 내세우는 '메이저 신문'의 논설위원이라면 귀담아 들을 거 같아 '말쟁이'가 감히 한마디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