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터뷰는 왜 안했나요?

저 인터뷰를 하면 내 연예생활에 도움이 되겠다 혹은 저 사람을 인터뷰해서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그런 목적을 가진 인터뷰들이 하릴없이 느껴져.
진짜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내 라디오를 들어라!
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작은 것까지 다 알게 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얼마전에 K본부의 상상모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마치 배철수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처럼 그런 반응이 오갔지.
그러나 이미 라디오를 통해 말해왔던 것들을 말했을 뿐 별다른 게 없었어. 방송을 본 라디오 팬들의 반응 역시 ‘형님 새로울 게 없었습니다.’ ‘음악캠프에서 다 하신 말씀이잖아요.’ 였어. 인터뷰같은 경우는 사생활 얘기는 별로 할 게 없어서 그렇지, 음악이나 방송 관련 인터뷰는 오케이야.

좀 늦게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늦게 시작했지.
제대하고 복학한 뒤 26살에 대학가요제 출전한 게 시작이니까.
대학가요제 때 히피 스타일이었는데, 머리가 무척이나 길었어.
뭐 그땐 아무데나 잘 앉았으니까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내 차림이 심상치 않았던 게야. 우리 대학가요제 동기였던 노사연, 심수봉, 임백천 이 친구들이 다들 내가 구두닦이인 줄 알았다나!
하여튼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별로 인기 없었어. 돈도 없고, 이 키에(178cm) 55킬로그램이었으니 너무 말랐던 거지. 특히 어른들이 싫어했는데, 왜 저런 사람을 좋아하냐며 말렸지. 지저분해 보여 피디들도 싫어했어.

원래 꿈은?

음악을 좋아하긴 했었어.
우리 땐 고등학교 때 다 기타치고 노래들 많이 했지.
대학교에 활주로라는 그룹사운드에 가입했는데, 거기서 아마추어로 활동했어.
그러다 군대를 갔는데, 제 1회 대학가요제를 하는 거야. 그걸 보다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제대하고 출전한 거야. 참 그때만 해도 가수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줄 알았지.

내레이션 참 잘하세요. 부러운데 비결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매일매일 MBC에 나오시는 모습 보면 MBC 직원 같으세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1시에 MBC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스케줄이 없을 땐 가급적 이용하지.
2시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데, 요일마다 조금씩 달라.
게스트가 나와야 하는 경우, 녹음해야 될 부분을 미리 녹음하기도 하구, 기본적으로 생방송 하구.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루 일과가 끝나지.
거기에 K본부 녹화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한주가 휙 지나가.

해외 뮤지션들이 내한하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꼭 나오잖아요?

팝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흐흐)
예전에 왔던 홍콩의 매니저들도 ‘다른 프로그램 없냐?’
그러면 한국측 홍보담당자도 ‘딴 거 없습니다.’란 대답만 했다는군.  
여하튼 거의 모든 해외뮤지션들이 거치는 프로그램이란 데 대한 자부심이 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뮤지션들을 데려다 놓고 음악에 관한 얘기는 안하고 다른 얘기들만 하다 보니 정작 음악 하는 뮤지션들은 불편한가봐.
그래서인지 뮤지션들도 그런 프로그램 출연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오면 편안해 하고 굉장히 만족해해.
우린 뭐 사생활이니 이런 거엔 관심 없구 오로지 음악에 대한 인터뷰만 하니까.
기억에 남는 뮤지션들도 꽤 있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7,8년전에 내한했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계속 보내.

아까 내레이션은 내공 없다 하셨는데, 그럼 라디오 진행에도 내공은 없는 건가요?

디제이도 오래 하면 다 잘해. 잘 하니까 오래 하는 거구. 오래 하니까 잘하는 거구.

아니, 오래하면  다 잘 할 수 있는데 오래 못하게 되는건요? 흐흐

그러게, 그럴 수도 있긴 하네. 나 같은 경우는 말이지 ‘신선하지 않다’, ‘고리타분해 보인다’ 오래 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이런 말들을 극복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야. 생각해 보니 운도 좋았던 것 같군. 허허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 또 하나. 파격적인 기획은 해본 적 없나요?

있지 왜 없겠어? 거의 18년을 했으니까 안 해본 기획이 없었지. 정말 오래해 보니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은 음악 틀고 음악 소개하구 사연 소개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매일 듣는 사람도 지겹지 않게, 처음 듣는 사람도 친숙하게’가 나의 캐치프레이즈야.
너무 어렵나?(허허)
파격적인 기획도 좋지만 늘 이런 마음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해.

매일 매일 그 오랜 세월 동안 해온 라디오 디제이란 일이 지겹게 느껴지진 않나요?

(매우 단호하게) 전혀 지겹지 않아.
매일매일 다른 음악들을 듣기에 참 즐거워.
운 좋게도 다른 디제이들에 비해 내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부분이 많아.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흐흐 이 부분에 대해 피디들에게 고맙게 생각하지.
보통 피디들 1년씩 프로그램 진행하는데, 나같은 경우는 오래하다 보니 두 번 만난 피디들도 있어.
디제이란 일 참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방송 아주 오래할 생각은 없어. 누가 그만두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둘 꺼야.
여행 다니고 자서전 쓰면서 살아 볼까나?

사실 말이야, 1980년에 6개월 동안 저녁 7-8시에 젊음의 찬가라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 했었어.
요즘처럼 작가도 따로 없었고, 디제이와 피디만 존재했지.
그 당시에 피디는 저녁 6시 넘으면 퇴근하는 체제여서 저녁 7시가 되면 아무도 없어서 별수 없이 혼자서 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할 얘기가 없더라구.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시도 읽어보고 했지만 별 도움이 안됐지.
결국 6개월만에 짤렸어.
28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할 얘기가 없나 싶었지.
그리고 10년 뒤에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하게 된 거야.

라디오를 진행하다 보면,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구성상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말들을 자꾸 하다보면 이거 전파 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는데...
젊음의 찬가 이후론 절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날은 말이 많은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안 나는 날이 있어.
그런 날은 그냥 음악을 듣고 싶어지지.
마이크 올린다구 의미 없는 말들 그냥 하는 것보다 정말 할 말이 없을 때 안 하는 게 더 좋다고 봐.
청취자들도 어떤 얘기가 진솔한 얘기인지 그냥 하는 얘기인지 다 아니까.
그리고 말이지 라디오 프로그램은 누구랑 하느냐가 참 중요해.
소통이 중요한 게 라디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