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글 > 특별한 이야기 > 강재형의 우리말 일기

제대로 쓰자, 소설.... 2006.01.22

'신춘문예'가 없어졌다. 아니, 많이 없어졌다. 이른바 '신춘문예 무용론'이 고개를 든 이후의 일이다.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는 거의 사라졌다. 올해 '신년호'에 신춘문예가 빠진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신춘문예'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서기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당선작. 한마디로 기가 막힌 작품이다. 작품성? 그건 내가 논할 일이 아니다. 문단의 고수들이 뽑은 작품이니까. 다른 면은 몰라도 '우리말'에 관한한 '뽑은 이'도 '뽑힌 이'도 '편집한 이'와 '교열한 이'도 수준이하다. 진짜? 함께 보자.

----------------------

새해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밖에는 늘 그러하듯 조간신문이 던져져 있었고. 여느 날과 다른 게 있다면 신문 뭉치가 두툼하다는 것 정도. 묵직한 새해특집호를 집어들었다. 거실 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신문 갈피를 하나씩 넘기니 ‘새해에 달라지는 것’이며 ‘정치판의 새해 기상도’며 하는 ‘거기서 거기인’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덤덤한 마음에 무심한 눈길로 대충 훑어보았다. 별쇄로 나온 특집호엔 신춘문예 단편 소설 당선작이 보였다. 가슴 철렁 내려앉는 사건 사고 기사 읽는 것보다야 백 번 나을 듯 싶어 찬찬히 읽어내려 갔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답답함이 가슴을 무겁게 눌려왔으니까. 왜? 여기저기 틀린 낱말과 문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심사평은 한술 더 떴다. ‘문장 감각 탁월’을 당선의 으뜸 이유로 꼽았으니까. ‘문장감각’과 ‘맞춤법’은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었던가?

'탁월한 문장 감각’을 지닌 당선작 속의 문장 몇 개를 짚어보자.

"나는 멸치국물을 다시다 말고 돌아보았다.” 멸치 국물을 다시다? ‘다시다’는 말은 ‘입맛을 다시다’할 때나 쓰는 말이다. 양념을 우려내는 거나 그 재료인 멸치, 다시마 따위를 일컫는 일본말이 ‘다시(だし)’이다. 일본말을 우리말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쓴 작가의 무심함이 놀랍다. “마음에 있는 옹아리는 어떤 식으로든 풀고 넘어가야 한다”에서 ‘옹아리’도 틀린 쓰임이다. 옹아리는 젖먹이가 옹알대는 것일 뿐이다. 사물(마음)속에 깊이 박힌 것은 응어리가 맞다. 문장하나 보기로 들고 그때마다 집어내 틀린 거 바로잡자니 너무 많아 보기 들기가 민망할 정도다. ‘문제 있는 문장’을 죽 늘어놓고 몰아서 짚어보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하다.

“그럴 때 마다 약으로 낳을 병이 아니란 단호한 거절만...”

“....당신의 존재는 시큼거리는 다리만큼..../눈이 시큼거리고 손목 마디마디....”

“....외출 때문에 걸렀던 춘난을 닦고 있었다.”

“....검붉게 물들어 볼상사나운 게 안되었는지....”

“그 날이 하필 염색약을 머리에 들이 붙는 날과 겹쳐지는....”

“시누이들의 호들갑에 어머니는 금새 원래 모습으로..../

.... 가게 주인은 금새 멀뚱히 놓여있는....”

“어머니가 나지막이 사랑하고 싶었는데....하고 읖조렸지만..../

....미안한 게 많네하고 읖조렸다”

“.... 영 잘못 짚은 것은 아니라고 설핏 생각했을 따름이다”

“사실 시누이들의 등살이 신경 쓰이기보다는 ....”

“유리덮게가 푸득거리는 것을 보다말고....”

“... 책상값을 후한 값에 쳐주기만 바랬다”

“....뒷산에나 가신게지 여기고 홍합을 소금물에 담궜다”

“이런 바튼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굳이 설명을 달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차릴 만큼 ‘쉬운’표현도 제법 눈에 띈다. 위 문장들의 어디가 문제인지 하나씩 짚어보자.

병이나 상처가 치유되는 건 ‘낳다’가 아니라 ‘낫다’, 뼈마디 따위가 시근거리는 건 ‘시큰거리다’해야 맞다. ‘시큼’은 냄새 따위에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우리 맞춤법에서 두음법칙(頭音法則)은 기본. 蘭(난초 란)이 둘째 음절이후에 오면 제 음가(音價)인 ‘란’이 된다. 그래서 ‘춘난’이 아니라 ‘춘란(春蘭)’이다. 춘난(春暖)은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뜻하는 말이다. 체면이나 예절을 차리지 않아서 남이 보기에 언짢은 건 ‘볼썽사납다’해야 바른말이고, 쏟아 붓듯이 마구 붓는 것은 당연히 ‘들이붓다’이다. ‘금새’는 어떤가. 당연히 틀렸다. ‘금방’과 한뜻의 말은 ‘금시에(今時-)’의 준말인 ‘금세’가 맞다. ‘읖조리다’는 ‘읊조리다’로 ‘덮게’는 ‘덮개’로 바로 잡아야하는 한다. ‘설핏’은 ‘언뜻’으로 써야 표준어법에 맞는 말이 되고 몹시 귀찮게 수선부리는 걸 이르는 말은 ‘등살’이 아니라 ‘등쌀’로 써야 바른 표현이다. 등살은 ‘등에 붙어있는 힘줄과 살’을 뜻한다. ‘등살’이나 ‘등쌀’이나 발음은 똑같은 [등쌀]이기에 헷갈려 그랬다고 덮어주기엔 ‘등단한 소설가’의 후광이 너무 밝다. 그래서 안타깝다. ‘...바랬다’와 ‘...담궜다’, ‘바튼..’은 소설가이전에 문학도인 당선자의 우리말에 대한 ‘무심함’을 잘 드러낸다. 어떻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라다’이다. ‘바래다’는 ‘(빛이)바래다 - 퇴색(退色), (손님을)바래다 주다 - 배웅’할 때나 하는 표현이다. 액체 속에 넣다, 김장을 할 때 쓰는 말은 ‘담그다’. ‘담구다’는 담그다의 사투리로 바른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담구+었다’에서 온 ‘담궜다’도 틀린다. ‘담갔다’가 바른 표현이다. 숨이 가쁘고 급하다, 근심이나 걱정 따위로 몹시 안타깝고 조마조마하다는 뜻의 으뜸꼴(기본형)은 ‘밭다’. 그래서 ‘밭은 마음’으로 활용해 써야 옳다.

어지간한 문서작성기(워드 프로세서)의 ‘맞춤법 교정 기능’으로도 충분히 가려낼 수 있는 게 위에 보기로 든 틀린 표기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어떨까. “ 아버님 제사때 어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약주 한 잔을 .... 어머니의 울음은 정종 한 잔에 희석되었는지 소리가 없었다.” 여기서 ‘정종’은 일본의 청주(淸酒)제조회사 상표인 ‘마사무네(正宗, まさむね)’를 우리한자음으로 옮긴 거다. 우리 제사상에 올리는 술은 ‘청주’이지 일본술 ‘마사무네’가 아니다. “새벽 두시를 넘겨서야 제사상을 물렸고...”할 때 ‘새벽 2시’도 흔히 잘못 쓰는 표현이다. 새벽은 ‘먼동이 트려할 무렵’일 뿐이기에 그렇다.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 밤 12시는 0시라고도 하니, ‘새벽 1시, 2시, 3시...’.는 오전 1시, 2시, 3시....로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끝으로 한문장만 더 돌아보자. “내 팔자에 사랑도 있었나 싶은지 늙어서 주책 맞게 용기 낸다.” - ‘주책 맞다’, ‘주책이다’는 비표준어, ‘주책없다’가 표준어다.

문학작품 속 표현을 두고 얘기하는 ‘표현의 자유’가 ‘맞춤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독자들의 작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보따리에서만 비롯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글과 말에 대한 천착은 기본’이라는 선배 작가들의 말을 이 자리에서 ‘꼬집힌’ 당선자도 곧이들었으면 한다.

덧붙임 : ‘당선자’는 1977년 생, (뽑힐 당시)스물 다섯 살의 여성이다. 그리고 이른바 일류대 ‘국어교육과’ 졸업 예정자이다. 끝.

----------------------------------------

확인하시었는지 모르겠다. '빼어난 문장감각'의 실체를 말이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위 글은 지난 서기 2001년 초에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글자락을 찾아낸 까닭은 우리 블로그, '문화생활'에 '절대공주'님이 올린 걸 봤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설은 제대로 쓰자. 글 쓴다는 이들이 말과 글을 모르면 안된다. 우리 사랑방 식구들은 '잡문' 휘갈길때도 제대로 쓰려 한다. 그게 기본이다. 진짜, 끝.